시집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문학동네시인선, 2016.4.5)
“형태 파괴, 실험, 그로테스크, 난해, 소통 불능 등등으로 규정되는 (…) 그것들은 그 무슨 비정상성의 징후가 아니라, 시가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신을 의심할 때 나타나는 어떤 진정성의 표기 같은 것” (신형철, 『느낌의 산문』, 17)
‘창비시선 통권 300호에 부쳐’라는 부제를 단 위 인용글에서, 신형철은 ‘민중적 서정시’라는 창비시선의 기조를 의아해 한다. 서구문학사에서 정치적 좌파와 결합한 것은 대개 과격한 전위시였는데, 한국 문학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문학인들이 미학적으로 보수적인 서정성을 고수하는 특유의 현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민중적’이라는 말이 정치적 좌파를 뜻하기만 하느냐 라고 신형철을 비판하는 일은 덧없을 것 같다. 신형철이 말하는 핵심은, ‘민중적 서정시’라는 부조화의 조화를 극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예술은 가능한 차선이 아니라 불가능한 최선을 지향해야” 한다는, 예술의 태도를 강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80년대에 ‘민중적 서정시’가 필연적인 역사가 있었을 것이다. 시는, 민중이 함성을 지르는 자리에서 정치적으로 변혁에 동조해야 하면서, 정서적으로 그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에 공감해야 했을 것이다. 정치적 좌파와 보수적 서정성은 창비와 그 시인들에게 기묘한 타협이었던 셈이다.
신형철은 예술이 ‘가망 없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의 본의와 어긋나지만, 시 역시 ‘가망 없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새로운 게 늘 좋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해도, 시는 언제나 새로 만들어지는 무엇이다. 그 ‘가망 없는 희망’에 부서지더라도, 계란을 집어 들 때, 시는 아름답다.
[마른 손] - 박시하
당신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당신에게 흰죽을 떠먹이는 동안
당신의 손은 별처럼 떨려요
하나의 별이
천천히 다른 시간으로 향하고 있어요
자꾸만 어딘가로
당신을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당신이 오래오래 걸어서 다다른 곳에선
쏟아지는 비만 내리고 있어서
이제 쉬고 싶다고 말하지만
당신의 발음은 이미 빗소리예요
당신은 울음을 꼭꼭 씹어 먹어요
눈물처럼 묽은 죽을 찡그리며 삼켜요
눈을 감아요
다시 뜨지 말아요
그렇게 흰 영원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요?
아빠, 그것이 보여요?
나는 가만히
마른 별을 놓아요
박시하 (2008년 등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는 낯설다. 그 낯섦은 그의 시가 서정성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외이기도 하다. 그 낯섦은 서정성의 다른 형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위 시는 병든 ‘아빠’를 연민하는 내용이다. 당신에게 흰 죽을 떠먹이고, 당신의 손이 별처럼 떨린다는 그것들은 병든 아빠의 징후이다. ‘흰 죽을 떠먹이는’ 행위와 ‘별처럼 떨리는 손’은 시에서 변주되는 이미지들이다. 흰 죽은 울음이 되고, 별은 다른 시간이 된다. 두 이미지는 위독한 아빠를 바라보는 화자의 심상(心象)들이다. ‘나는 가만히 마른 별을 놓아요’ 라는 결구는 아빠의 마른 손의 은유이면서, 죽음을 예감하는 화자의 아픈 연민이다.
(전통적 서정시) 대상 - 묘사 - 정서의 환기
(박시하 서정시) 심상 – 기술 – 정서의 전이
위 시는 박시하 시집에서 직관적 이해가 쉬운 시를 고른 탓에 그의 시적 특징이 각별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그가 다루는 서정성의 방식은 충분히 보여준다. 전통적 서정시가 ‘대상’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여 독자에게 ‘정서를 환기’한다면, 박시하의 시는 대상을 뚜렷이 내세우지 않는다. 위 시는 ‘아빠’라는 대상이 드물게 뚜렷하지만, 그 대상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기 보다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것을 ‘심상’이라 구분한다)으로 ‘기술’한다. 박시하는 화자의 정서를 심상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이한다. 그 차이는 보기보다 사소하지 않다. 그의 시집을 펼쳤을 때 느껴지는 낯섦은 그것 - 그가 대상보다는 심상에 기우는 탓에 있다.
시가 인간의 정서를 다룬다고 할 때, 시적인 것에 서정적인 것이 포함된다고 할 때, 서정성에서 시를 새롭게 만드는 방법은 특별한 기술에 틀림없다. 새로운 것이 언제나 성공하기 어려운 것처럼 박시하 시가 모두 아름답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가망 없는 희망’을 품은 분명 시인이다.
비슷하지만 다르게 가족의 병간호를 그려낸 시를 읽어보면, 박시하 시의 서정성과 차이를 볼 수 있다. 대상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여 정서를 환기하는 이성복 시 역시 좋은 시에 틀림없다. 그러나 박시하 시가 새로운 시에 더 가깝다.
[나의 아름다운 병원] – 이성복
대형병원 유리창에 비친 맞은편 건물의 그림자처럼
이 생은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다는 것일까,
푹푹 찌는 주차장 너머 불덩어리 해가 꺼지기 전에는 ……
빽빽한 느티나무 속에서 매미가 울고, 소리가 울고,
소리가 죽고, 그 다음엔 넌 또 어떻게 할 건데?
그래, 저기 지아비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여인은 퍽퍽
울면서 중환자실로 달려간다 너무 늦은 것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저런 것일까? 주사라도 맞았으면,
뽕이라도 맞았으면, 내가 못 맞는다면 생이여, 너라도
맞았으면 …… 생이여, 나는 또 구름카드를 공중전화
투입구에 넣고 통화를 시도한다 아무도, 아무 데서도
받지 않는 전화에 건성 말대꾸하며 나는 중얼거린다
중얼, 중얼거리면서 생이여, 굳게 닫힌 네 이빨 사이로
묽은 미음을 밀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어여쁘디
어여쁜 나의 생이여, 어여 어여 뜨거운 물수건 꼭 짜서
끈끈한 네 이마를 닦아주면 넌 좋아할까? 어여, 어여
집으로 가라고 재촉하는 너는 그러나 내가 제 자식임을
기억하지 못한다 미친 척하고 어머니! 한 번 불러 줄까?
불러주면 좋아하기나 할까? 붉은 땡볕 아래 뜨거운 팥죽
쑤어 새알이라도 먹여줄까? 솥 걸고 개 잡아 꺼덕거리는
‘만년필’이라도 꽂아줄까, 네 입에, 아니면 핏발 선 네 눈에?
이래저래 생사가 복잡한 나는 지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의
어린 다람쥐처럼 이 생의 저변을 콩닥거리며 뛰어다닌다
(2016.11.26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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