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독점적 시점 – 문태준 [마르고 있는 바지] 와 [밤과 호수]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창비, 2015.4.20)
1.
시의 화자가 늘 시인일 것으로 기대하는 건 너무 과소하다. 여전히 많은 시들에서 화자는 시인이거나 시인의 대역인 ‘나’이지만, 그렇지 않은 시들도 있다. 소설에 인칭이 있는 것처럼, 시의 화자 역시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시에서의 화자는 일종의 탈(mask)이다. 화자는 한 작품에서 시인이 쓴 역할 모델이다. 왜 시인이 하나의 역할을, 특정한 화자의 목소리를 취택하여 시를 썼는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화자를 분석하고 다시 그 목소리를 관통하는 세계관을 검토해야 한다.” (권혁웅, 시론, 26) 소설에 1인칭과 3인칭 그리고 전지적 작가시점 등등이 있다면, 시는 그런 화자(시점)을 다 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가 보여주는 사물시점은 시가 새로울 수 있는 장치가 된다.
문태준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에는 몇 편의 시(엄밀히 꼽는다면 아래 예시(例詩)된 두 편)가 사물시점이다. 사물시점은 시인의 혹은 인성의 투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에는 시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재미가 분명 있다.
2.
[마르고 있는 바지 – 드로잉2] - 문태준
축축한 음지를 널어다오
너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눈의 높이에 맞춰
꽉 짜서 펼쳐다오, 하체를 감싸고 있던 닳은 밑단을
흘러 내뻗는 물처럼 걸어가며 우는 사람을 다오
그리고 광원(光源)을 다오
스스로 말라가는, 아물어가는 긴 환부를 보여다오
이 시의 화자는 바지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의 서술은 세탁된 바지가 빨랫줄에 널리고 말리고 입을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축축한 음지를 널어다오”는 세탁 후 물기 많은 상태를
“눈의 높이에 맞춰 꽉 짜서 펼쳐다오”는 세탁된 빨래를 너는 상태를
“하체를 감싸고 있던 닳은 밑단을 흘러 내뻗는 물”은 건조의 과정에서 밑으로 쏠리는 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화자로서 ‘바지’는 속 깊은(?) 뜻을 품고 있다. 그 바지는 무슨 의식이라도 있는 양 무언가를 희구(希求)한다.
“광원(光源)을 다오”라고, 청자인 ‘너’에게 햇빛을 요구한다.
“걸어가며 우는 사람을 다오”, “말라가는, 아물어가는 긴 환부를 보여다오”라고, 청자인 ‘너’를 불러와 그 맨몸을 품어주려 한다. ‘너’의 맨몸은 말라가며 아물어가는, 상처 있는 긴 다리를 가졌다. 여기에 이르면, ‘바지’는 단순히 신체를 보호하고 치장하는 기능을 넘는, 상처받은 자를 품는 위안으로 상징된다.
이 시의 사물시점은, 원래 대상(바지)을 주체(화자)로 원래 화자(너=나)를 대상으로 뒤바꿔, 드러내고 싶은 것(나의 현상 혹은 욕망)을 객관적인 척 드러내는 시적 트릭이다.
[밤과 호수 – 수변시편2] - 문태준
내 검은 동공에 퍼덕이는 새를 담아다오 나는 눈을 감을 수 없소 새의 북향 행렬과 찬 하늘을 담아다오 희푸릇한 별을 쏟아다오 물오리를 내려앉혀 수면을 쳐다오 산을 넣어다오 일하는 소 같은 목덜미 울퉁불퉁한 능선을 넣어다오 나를 열어젖혀다오 일으켜세워다오
이 시의 화자는 호수다. 어두운 밤 호수의 수면은 “검은 동공”으로 은유되고, 그 동공에 “퍼덕이는 새”와 “새의 북향 행렬”과 “희푸릇한 별”을 담고 싶어한다. 물오리를 내려앉히고, 산의 그림자를 기울이고, 능선의 굴곡을 비추고 싶어한다. “나를 열어다오 일으켜세워다오”는 호수의 궁극의 기원이다. 그것이 희구하는 천지인(하늘과 별, 산과 능선, 새와 물오리)은 인간계를 환유하는 게 아닐까. 거기서 나를 열어달라 하고 일으켜 세워달라 하는 소망은 호수의 목소리로부터 나오고 있지만, 시인의 의중은 없을까.
이 시의 사물시점은, 말하기 어려운 소망을 사물을 빌어 말하는 시적 트릭이다.
3.
겨우 두 편의 시가 가지는 공통점을 일반화한다면, 비웃음을 당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게다. 그렇더라도, 두 사물시점의 시가 ‘하오체’(‘-다오’는 하오체의 변형)의 어조를 보이는 것과 희구적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적어도 문태준 시인에게 사물시점이 스스로 말하기 어려운 소망을 밝히는 언술 방식이거나, 따분할 수 있는 소재를 낯설게 하는 트릭이 되는 건 아닐까 조심스레 짚어본다. 시가 소설보다는 한 가지 더 다른 시점으로 우리를 낯선 지점에 잠시 머무르게 한다면,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2015.6.19 진후영)
[사족]
소설에 사물이나 동식물을 화자로 삼는 형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동화나 우화 형식은 인간이 아닌 것들에 빗대어 인간사를 흔히 이야기한다. 그렇더라도 그것들은 의인화 내지 알레고리 - 즉 비유의 영역이다. 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화자는 시점의 영역이다. 그 비유의 영역이 인간을 우화하는 이야기의 트릭이라면, 사물시점은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시적 트릭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