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015

늙은 시인과 젊은 독자 – 이시영 [기관구의 아침]

진후영 2015. 8. 13. 18:53

시집 『호야네 말』 (창비, 2014.12.16)

  이시영 (1949-) 시인은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시는 시조를 기원으로 한 때문인지 너무나 단출하다. 형식에서 한두 줄 시가 흔하고, 내용에서 한 대상에 한 감상으로 그친다. 대략, 이번 시집은 관찰에 해당하는 일상 속의 단편(短篇)들이나 그것들을 모티프로 한 동화적 상상을 보여주는 것들과 추억 밟기에 해당하는 감상들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나이든 시인들의 시적 성향은 나이든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유사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한 부류는 오히려 기를 쓰고 자신과 시를 실험하고, 다른 부류는 여유롭게 자신과 시를 풀어낸다. 그간 읽은 시인들 중에서, 이성복 (1952-) 김명인 (1946-) 정진규 (1939-) 시인 등이 여전히 대상에 바짝 긴장하는 탐구를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황동규 (1938-) 고형렬 (1954-) 그리고 이시영 시인 등은 일상을 편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어느 부류가 더 좋은지는 독자의 성향에 따른 선택이더라도, 시를 왜 읽는가를 생각해본다면 답은 간단하다.

  이시영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시는 대단히 소소한 것이다. 시가 품는 세상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소소한 것처럼 보인다. 시인이 그렇게 보듯이, 작은 것들 - 가령 철도보수공이 선로를 망치로 탕 내리치는 일이나 빨랫줄에 덩그러니 빨래집게 두 개가 남아있는 것이나 유아학교 버스가 맑은 하늘 아래 엉덩이를 뿅뿅거리는 풍경이나 노숙자에게 천원짜리 지폐를 건네는 인정 들이 산재(散在)하여 세상을 이루고, 그 순간 세상은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군더더기 다 떼어내고, 시인은 오직 그러한 단편들을 모자이크하여 세상의 한쪽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는 시인이 쓰는 것이지만, 시를 읽는 것은 독자이다. 따라서, 산다는 게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는 신념이 철학일 수 없는 것처럼, 소소한 일상을 그저 포착하는 시는 시가 아닐 수 있다. 시가 읽히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시는 나이를 암만 먹어도 기를 쓰고 실험되어야 하는 무엇이어야 한다. 세상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더듬는 것은 쉽고, 대개 상투적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시가 쓰일 때, 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 시집에서 시인의 성향을 엿볼 몇 편을 골라본다.


[기관구의 아침]             - 이시영

철도보수공이 망치를 들고 선로를 탕 내리치고 지나가면
저 멀리서도 나사들은 이를 알아듣고 어깨를 꽉 조이며 응답한다
텅!
이 소리로 기관구의 아침은 또 부산하게 시작되는 것이다


[방배동 두레마을]          - 이시영

빨랫줄엔 빨래가 없고 빨래집게 두개가
외로운 참새처럼 허공을 한뼘씩 물고 잠들고 있다


[구름학교]                    - 이시영

  태풍 산다가 휩쓸고 간 하늘이 구름 한점 없이 맑다. 방금 3∼5세 아동들을 태우고 마포를 출발한 유아학교 버스가 뻥 뚫린 하늘을 마음 놓고 달리다 갓길에서 모자를 고쳐 쓰고 나온 구름경찰에 걸려 엉덩이를 뿅뿅거리며 딱지를 떼이고 있다.


[겨울아침]                   - 이시영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남대문 광역버스 정류장
발가락이 삐져나온 운동화를 신은 노숙자 하나가
가로수에 기대어 떨고 있었다
안 보이는 손 하나가 다가와 그에게
따뜻한 천원짜리 한장을 쥐여주었다


  시인의 출발이 시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시조는 그리 훌륭한 문학 양식이 아니었는가 보다. 김현은 “개인이 없고 규범만이 있다는 점에서 시조와 가사는 문학적으로 별로 우수한 것이 못 된다. 나로서는 한국 문학사상 가장 치졸한 양식화를 시조와 가사가 대표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김현,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사회와 윤리, 44) 김현의 시조에 대한 단정이 다소 과격한 발언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개인이 없고 규범만 있는 세계’나 ‘단출하게 그려진 세계’나, 현실이라는 다면체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세상은 언제나 시보다 복잡하다. 시인은 늙어도 독자는 늙지 않는다. 그래서 몇 줄의 시는, 거기서 그치는 시의 자세는 충분히 위태로울 수 있다.

(2015.8.13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