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015

익숙한 것의 불편함 – 이하석 [빈집]

진후영 2015. 11. 3. 22:23

시집 『연애 間』 (문지, 2015.8.28)

  흔한 것이 시가 되는 순간은, 세상의 예술이 대개 그럴 것처럼, 적당한 수준 이상의 격을 갖출 때다. 서정시는 흔하다. 개인의 정서란 길거리 낙엽만큼이나 발끝에 채이는 일상적인 것이다. 일상이 시가 되기 위하여 서정시는 특별하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이란 ‘대상을 통하여 넌지시 말하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하석 (1948-) 시인은 노장이다. 1971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하여, 문지사에서 출간한 시집으로만 7번째이다. 이전 시집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번 시집은 바로 ‘대상을 통하여 넌지시 말하기’라는 서정시의 중력장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중력에 붙들려 시인도 그의 눈에 비추이는 대상도 대지에 묶여 있다. 시인은 대상을 통하여 자신의 상념을 넌지시 말한다. 그의 시가 아름답다면, 대상(對象)이 아름다운 것이다. 대상 너머 있는 시인의 상념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정말 사물보다, 대상보다 시인의 상념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서정시가 어려운 지점이 여기쯤이다.

  이번 시집에서 한 편을 골라보았다.

[빈집]          - 이하석

문이 부서져 있다.
물론 닫을 마음이
없다.

축대 아래 마당은 바랜 기억들
무성하게 덮여 있다.
축대의 돌들이 얽어 짜고 있는
침묵의 구조는
바람만이
그늘진 표정으로 읽어낸다.

축대 사이 캄캄한 속 내보이는 수구(水口).
뒤꼍의 우묵한 데 고인 물이
그리로 해서 빠져나갈 때는 늘 어둠이
물을 씻어놓는다.

바깥이 내다보이는 문의 부서진 틈으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집 안 구석구석 숨어 있는,
어둠의 끈들로 묶인 틈들을
바람이 덜커덩대며 흔들어보지만,
봉창부터 여미는
풀 넝쿨들의 교묘한 그늘의 직조를
거미들이 재빠르게 마감해놓는다.

  이 시의 대상은 빈집이다. 문이 부서져 있고,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축대 사이 수구(水口)가 캄캄하고, 거기 물이 흐르고, 집 안 구석구석 바람에 덜커덩댄다. 봉창에는 거미줄이 쳐 있다. 이 시의 정서는 그렇듯 쓸쓸하다.

  이 시를 이루는 문장들은 지극히 아름답다. 그것들은 비유이며, 비유란 ‘대상을 통하여 넌지시 말하기’를 문장에 담아내는, 말하자면 서정적 기술을 문장으로 줄인 미니어처인 셈이다. 가령,

‘축대 아래 마당은 바랜 기억들 무성하게 덮여 있다’는 잡풀을 기억들로 은유하고 있다.
‘축대의 돌들이 얽어 짜고 있는 침묵의 구조’는 축대의 형상을 침묵으로 은유한다.
‘어둠의 끈들로 묶인 틈들’은 어둠을 끈으로, 다시 틈을 어둠으로 은유한다.

  문장조차 대상을 통하여 기억과 침묵과 어둠을 말하고, 시는 대상을 통하여 쓸쓸함을 말하고 있다. 시는 대상을 통하여 아름답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사물이 아름다워야 하는가? 대상이 아름다워야 하는가? 시인의 상념이 이름다워야 하는가? 사물은 객관적 실재이고, 대상은 사물을 수용한 시인의 감각이며, 상념은 감각에서 연유한 감성이다. 사물 쪽으로 아름다움을 넘기는 것과 시인 쪽으로 아름다움을 당기는 그 차이 - 거기서 서정시의 낯섦과 낯익음이 갈라진다.

  이하석 시인의 시는 낯익다. 그 이유는 대상이 뚜렷하고 상념은 더욱 깊은 데 있다. 그의 시에서, 사물은 어느덧 사라지고, 대상은 시인 쪽으로 바짝 당겨져 상념에 모든 것을 넘겨준다.

  낯익으면 익숙하고, 익숙하면 편하지만, 편한 것은 때때로 불만이 되기도 한다.

(2015.11.3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