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울어야 하는 이유 - 원구식 [목울대]
시집 『비』 (문지사, 2015.3.9)
원구식(1955-) 시인을 내가 처음 읽은 것은 트위터에서다.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인데, 이 시는 누가 읽더라도 절묘하고 쉽고 기발하리라. ‘삼겹살의 맛은 희한하게도 뒤집는 데 있다 (…)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 세상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그 시를 읽으며, 세상은 못 뒤집고 겨우 삼겹살이나 뒤집으며, ‘세상이 회까닥 뒤집혀버리는 도취의 순간을’ 시의 삼겹살로 맛보며, 즐거웠다. 그리고 시도 시인도 잊고 있다가, 근간 시집 『비』를 펼쳐보니 거기 그 시가 있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그 ‘삼겹살’ 같은 성향의 시를 몇몇 보여준다.
세상이 번듯하게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은 뭔가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을 원리로써 연구하면 과학자가 되겠고, 의도로써 의심하면 음모론자가 되는 셈이고, 상상하여 해석하면 시인처럼 되는 거 아닐까? 삼겹살 뒤집는 일에서 세상 뒤집는 일을 유추해 내는 게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게 쉬웠다면 그런 시는 원구식 시인 이전에 있어야 한다.
시를 읽는 일이 즐거운 까닭이 여기 있다. 비록 시가 혁명은 안되고 선동도 못하고 삼겹살이나 뒤집더라도, 그것을 세상 뒤집는 일로 상상해내는 그 지점에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한 즐거움이 또 하나 남자의 몸에도 있는 것을 원구식 시인은 찾아낸다.
[목울대] - 원구식
나는 목울대라는 말이 참 좋다.
목울대 목울대 하고 부르면
내 몸 어디에선가 슬픈 나무 냄새가 난다.
여자에게 없는 이 나무는
후두를 지나
한사코 눈물샘과 연결되어 있다.
설움에 복받쳐 우는 여인들의 양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이는 까닭은 바로
슬픔의 원천인 이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를 나무라고 하는 까닭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의 울림통이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 나무가 물렁하지 않다면
누구도 이렇게 큰
울음소리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내장 깊은 곳에서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올라 목울대를 칠 때
비로소 울음이 완성된다.
코가 시큰거리고
눈물샘에 수정보다 맑은 물이 고인다.
목이 울 때가 된 것이다.
목울대는 남자의 상징이다. 삼겹살을 ‘뒤집다’에서 세상을 ‘뒤집다’를 유추해내는 것처럼, 목울대로부터 별별 상상을 다해내는 시를 읽는 것은 슬프고, 즐겁다. 어느 순간 “목이 울 때가 된 것”이라면, 남자는 그때 울어도 좋겠다, 시인 말마따나.
(2015.12.4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