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시가 되는 이유 – 문충성 [우리 동네 세탁소 한 아줌마]와 [소원]
시집 『마지막 사랑 노래』 (문학과지성사, 2016.5.16)
[우리 동네 세탁소 한 아줌마] - 문충성
타악!
크게 들린다 크게
귀 하나 가득 흔들린다
세탁물 있으면 세탁하란 소리
햇볕에 타서 건강하게 빛나는 목소리
저 성실한 눈빛 아!
우리 동네 세탁소 한 아줌마
오늘도 ‘세’는 안 들린다
타악!
썰물 소리 깊은 날
문충성(1977년 등단) 시인은 이번 시집을 포함하여 스물 한 권의 시집을 낸 노장이다. 시집 뒤 해설에 따르면, 다작가지만 시집마다 ‘동일한 소재와 어조, 유사한 주제가 반복’되는 운운, 한마디로 문제작가는 아닌 듯하다. 시인 스스로 그런 속내를 내비친다. “젊은이들 시를 늙은이들 읽어도 모릅니까 / 늙은이들 쓰는 시는 구닥다립니까” (28, [아직도 시를 쓰고 계십니까] 중에서) 독자의 시선에서 ‘구닥다리 맞습니다’ 라고 답해주어야 하나? 구닥다리면 어떤가? 수십 년 시를 썼고, 스물 한 권이나 그 기록물을 가지고 있고, 여태 시인이지 않은가? 시인의 자리는 아직 영광의 자리이다.
시인의 시는 연민의 세계라고 단정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연민과 자신에 대한 연민, 그 둘이 그의 이번 시집을 떠받친다. 위 시는 세상에 대한 연민 가운데 하나이다. 곤궁한 삶, 그것을 버텨내는 건강한 목소리를 포착하고 있다.
시는 짧지만, 첫 행 두 음절로부터 음절수를 점차 늘려 마치 ‘(세)타악!’ 지르는 목소리가 커지다가 아련히 사라지는 모습을 형상하는 듯하다. 글자로 그려낸 목소리의 원근이다. 이 시가 시로 버텨내는 기술은 또 있다. ‘(세)타악!’ 목소리가 파문을 일으켜 적막을 깨고 공기를 흔들다. 그것을 “귀 하나 가득 흔들린다”라고 하거나, “햇볕에 타서 건강하게 빛나는” 얼굴이라 하지 않고 ‘목소리’라고 하는 부분이다. 그 흔들림과 빛남은 ‘목소리’의 은유적 활용이다. 시는 그 주체(세탁소 아줌마)를 대신하여 ‘목소리’로써 삶의 건강함과 깊이를 보여준다. 이때 ‘목소리’는 부분으로 전체를 가리키는 제유이기도 하다.
시가 시로 버텨내는 힘이 여기 있다. 목소리의 원근을 잡아내는 시각적 형상은 절제의 기술이고, 은유와 제유를 활용하는 그것은 비유의 기술이다. 세계의 한 부분 한 순간을 포착해내는 감각은 시를 진술하는 화자의 태도 – 연민으로 드러난다. 절제와 비유와 태도 – 이 세 가지의 조화가 위 시의 힘이다.
그런데 그 시의 힘을 까먹는 부분이 있다. “저 성실한 눈빛 아!” 감정을 직접 드러내는 이 문장이 시의 긴장을 해친다. 시인이 "늙은이들 쓰는 시는 구닥다립니까" 하는 불만에 대하여, 독자의 시선에서 ‘구닥다리 맞습니다’라고 답하는 지점이 여기이다.
시집에 자기 연민의 시가 유독 많은 가운데 아래 시도 적당히 시다.
[소원] - 문충성
“할아버지!
추석 달 보셔요!”
구름 사이로 추석 달이 보인다 둥그렇게
그래 소원을 빌어야지
열 살짜리 유빈이가 소원을 빌었단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프지 않게
오래오래 사시게 해주세요!” 하고, 아아!
열 살짜리 손녀에게까지 소원이 되어버린
한 뼘
병든
우리 목숨
위 시는 오직 “열 살짜리 손녀에게까지 소원이 되어버린” 그 부분에서만 간신히 시가 된다.
(2016.9.22 진후영)
[사족]
문충성 시인이 불만하는 젊은이들 축에 든다고 해야 하나, 유홍준(1962-) 시인의 아래 시를 읽어보면 비슷한 소재와 연민의 태도(연민과 해학, 어조가 이중화되어 있다)라도 시가 얼마나 다른지 가늠이 된다. 물론 어떤 시가 더욱 시적인지는 독자 나름일까?
[세탁소] - 유홍준
人皮를 빽빽이 걸어놓은 세탁소
이건 네 거죽이고
저건 네 마누라 거죽이야 얇디얇은
비닐 커버로 둘러씌워진 거죽마다 명찰을 달아놓은 세탁소
다리미질에 지친 사내 계단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똥 누는 폼으로 쪼그리고 앉아
사타구니 불룩하니 튀어나온 불알 두 쪽,
누가 너무 올라붙는 옷은 입지 말라고 했지?
창문 열려진
세탁소에 온 동네 거죽들이 흔들거린다
805호 여자 806호 남자 허리를 휘감고 있다
내복처럼
살갗에 너무 올라붙는 사람은
왜 입지 말라고 했지?
담뱃불에 지져진 구멍 때우려
나, 허름한 내 거죽 들고 세탁소 간다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실천문학사, 200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