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017

딸아이의 정치학 – 박노해 [바람이 돌더러]

진후영 2017. 8. 19. 17:48

시집 『노동의 새벽』 (풀빛, 1984.9.25)

  

20대 딸아이는 마냥 즐겁다. 사는 게 즐거운 그 얼굴을 보는 것으로 함께 즐겁다. 언제나 즐거울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아들은 내 말을 주의 깊게 듣는데, 너는 내가 말하면 딴짓한다고 딸아이를 훈계도 해 본다. ‘나는 가벼운 농담이 좋아. 무거운 이야기는 안 들어.’ 딸아이는 즐거운 삶에 확고하다. 그렇게 끝없이 즐겁기를 바라지만, 불안한 구석은 아빠인 내 몫이다.

 

책을 안 읽는 딸아이에게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사주었더니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지하철에서 읽는단다. 그 책 재미있냐고 물었다. 딸아이는 가방에 넣고 다니니까 책이 헐었다고 아깝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내용에 감탄하는 게 아니라, 책의 외관을 아까워하는 그 표정에서 그답다는 즐거움을 본다. 황현산 선생이 난해시 해설에 탁월한 평론가라는 말에는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한다. 어쨌다고? 그 책은 시를 말하지 않는단다. 딸아이가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건 아빠의 헛꿈 같은 거다. 그것 말고도 즐거운 일은 세상에 너무나 많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는, 책에 교훈이 있을 거라는 윤리적 믿음 내지 책에 정서를 순화할 카타르시스가 있을 거라는 감성적 기대 등을 깔고 있다. 그런 책들도 있을 것이나, 책도 사람이 쓰는 것인 한, 사람이 가지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책을 읽어서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 거의 허망한 바람이다. 책보다 즐거운 것을 딸아이는 언제나 제 손에 쥐고 있다.

 

윤리도 감성도 즐거움도 아닌 책 그것은 마치 이 시대 시와 같은 운명이다.

 

1980년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읽으면서, 그가 얻은 것과 그가 잃은 것을 짚어본다. 그 시절 폭압의 정치체제와 나쁜 자본주의 하에서, 박노해는 민중이 헛꿈 꾸지 않고, 그러니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중산층으로 올라가라는 세뇌된 욕망을 버리고, 노동가치를 구현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정치적인 것으로써 시를 썼다고 한다. 그가 얻은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를 현실정치와 같은 제도의 영역으로, ‘정치적인 것을 인간사회에 내재하는 갈등과 적대의 태도로 구분한다 : 이장욱 [, 정치 그리고 성애학]에서 정리함) 그 이후 30년을 넘게 격한 지금 박노해 시를 읽는 일은, 말하자면 윤리도 감성도 즐거움도 아닌 시의 한 역사를 읽는 일이다. 80여 년 전 이상의 시가 아직 기껍게 읽히는 것이나, 박노해보다 몇 년 앞선 이성복과 황지우가 역시 아름답게 읽히는 것이나, 그런 것들에 비교하면 박노해가 잃은 것은 시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박노해가 정치적인 것을 얻은 대신 시를 잃었다고 할 때, 그가 잃은 시는 낡은 목적론적 시이다. 시가 윤리도 감성도 즐거움도 아닌 시대에 낡은 목적론적 시는 하찮다고 할 수 있다. 시와 삶과 정치혹은 정치적인 것을 일치시키려는 세계사적 시도가 모두 허사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시사에서 그가 이룩한 실패는 기록적이다. 그가 유일한 실패는 아니더라도, 그는 위대한 실패로 기록될 만하다.

 

그러한 실패한 정치적인 것을 다시 읽어보자.

 

[바람이 돌더러]          - 박노해

 

모래 위에 심은 꽃은

화창한 봄날에도 피지 않는다

대나무가 웅성대는 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갈대가 두 손 쳐들며 아우성치는 것도

바람이 휘몰아치는 까닭이다

돌멩이가 굴러 돌사태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에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함이다

 

대나무나 갈대나 돌멩이나

바람이 불기에 소리치는 것이다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다

돌아오는 건 낙인찍힌 해고와 배고픔

몽둥이에 철장신세뿐인 줄 빤히 알면서

소리치며 나설 자 누가 있겠느냐

그대들은 우리더러

노동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우린 돌처럼 풀처럼 조용히 살고 싶다

다만 모래밭의 메마른 뿌리를

기름진 땅을 향해 뻗어가야겠다

우리도 봄날엔 소박한 꽃을 향기로 피우고 싶다

우리로 하여금 소리치게 하고

돌사태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바람이 드세게 몰아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7.8.19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