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017

시가 재미없으면 비평 탓이다 – 장수진 [봉지 언니 스피드]

진후영 2017. 11. 28. 10:05

시집 『사랑은 우르르 꿀꿀』 (문학과지성 시인선 502, 2017.9.11)

 

시는 세계를 인식하고 재현하는 상투적인 방식과 싸운다. 우선 상투적인 언어들을 전복할 것, 그를 통해 사유를 전복하고, 가능하면 세계를 전복할 것. 이것이 시인 카타콤의 조직 강령이다. 서사를 장착할 필요는 없다. 교훈도 옵션이다. 언어 그 자체를 직접 타격한다. 이것이 시인 카타콤의 행동 강령이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247)

 

[봉지 언니의 스피드]          - 장수진

 

한 아이가 나뭇가지를 세우고 있다

 

얘야, 너의 인생이 반짝반짝 작살날 거야 언니를 믿어봐

 

아저씨 오라이! 차가 후진한다

 

아이가 뒷바퀴에 끼인 채 교보생명 아저씨의 출근길에 동행한다

 

나뭇가지가 텅 빈 골목 한가운데 서 있다

 

비닐봉지가 나뭇가지 위로 떴다 사라진다

 

이것은 현대미술이오니 아이의 불행을 현대자동차가 응원합니다

 

301호 김 할머니가 문을 연 채 현관에 놓인 손주 신발을 뭉개고 앉아 있다

 

할머니, 할머니의 말년에 명예운이 있어요 나와요 골방에서, 자연스럽게 걸어가요

 

할머니 걷는다

 

, 5층에서 할머니를 향해 흑백의 개를 집어 던진다

 

여든셋이랬나, 고생하셨어요

 

자타살 협동조합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빈 봉지고요, 보통 봉지 언니라고 불러요

 

어디든 달려갑니다, 원하시는 모든 걸 담아,

 

장수진(1981-) 시인의 첫 시집을 읽는 일은 카오스를 헤매는 경험이다. 그의 시는 일반 독자가 기대하는 시의 정서를 배반하고, 언어의 질서를 위반하고, 논리의 귀결을 거부한다. 당혹한 충격도 없다. 충격이란 폭로나 반전에서 오는 것인데, 그의 시는 충격을 만들 이야기조차 품지 않기 일쑤이다. 재미는 있을까? 다양한 시를 읽지 않는 독자가 아니라면 그 시집을 끝까지 읽어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시가 재미를 놓치는 경우, 다르거나 난해한 경우인데, 그의 시는 다른 상상력으로 다르게 쓰여져 있다. 한편으로 보면, 그걸 애쓰는 시인이나 읽고 다만 느끼겠다는 독자나 부추기는 평자나 모두 딱한 것은 매한가지 같다.

 

17회 창비신인시인상에 작품을 보낸 인원은 850여명이었다. (…) 응모자들의 대부분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치중하고 있었다. 시의 새로움은 화법에서 오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말하는 사람이기에 앞서 발견하고 사유하는 사람이다. 새 입이 아니라 새 눈과 새 사유에서 진정한 새로움이 오는 것이라 믿는다.”

(17회 창비신인시인상 심사평 중에서, 『창작과비평』 2017 가을호, 485)

 

우선 창비신인시인상 심사평은 신인시인을 뽑는 기준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 기준이란 게 무엇을 말할 것인가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구분하고, 내용을 형식보다 높게 보고 있다. 문제는, 내용과 형식을 이분하고, 말하기에 앞서 사유하라 하고, 진정한 새로움이 새 입이 아니라 새 눈과 새 사유에서온다는 구호(?)가 그렇게 균형 잡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같은 책의 제35회 신동엽문학상 심사평에서 염무웅 평론가는 임솔아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은 내게 접근하기 쉽지 않은 난해의 세계였다. 그러나 소통불능의 수많은 난해시들과 구별되는 어떤 강력한 진정성이 시의 바탕에 깔려 있음은 대뜸 감지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국내 기성의 평론가가 어떤 시를 난해하다고 하는 것은 얼마큼 겸손이고 얼마큼 사실일 것이다. 시를 전문하지 않았다면, 현대시는 평론가조차 난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어떻든, 그가 읽어낸 임솔아 시집의 진정성이란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기반하는 말이다. 진정성이란 말하는 태도, 즉 시라는 언어에서 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엇나간 사례들 같지만, ‘새 눈과 새 사유를 더욱 요구하는 것은 시라는 세계의 입구에 잘못 세운 평자의 깃발이다.

 

서두에 인용한 신형철의 비평은 시인과 독자 그리고 평자 모두에게 좋은 준거가 될 거 같다. 적어도, 거기서 현대시를 독해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신형철은 시인 카타콤(초기 기독교 시대의 비밀 지하묘지. 이 말은 시가 푸대접 받는 현실에 대한 자괴이고 또한 부활할 가능성을 품은 웅지일 것도 같다), 그 침침한 지하세계에 조직 강령과 행동 강령을 한 마디로 언어의 전복이라고 말한다. ‘언어를 전복하고, 사유를 전복하고, 가능하면 세계를 전복하라는 그 강령에서 첫째는 언어의 전복이다. 언어를 전복하는 구체적인 사례로써 신형철은, 1)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상투적인 연결을 일그러뜨리고”, 2) “한 편의 시 안에서 어미의 통일성을 의도적으로 깨며”, 3) “문장과 문장 사이의 논리적 접속관계를 꾸준히 헝클어놓는다” (같은 책, 265)라고 제시한다. 이 영민한 비평가는 현대시의 독성(난해)과 해독(코드)를 함께 처방한다. 그의 강령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속에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넣고, 그 반대 역시 포괄한다.

 

위에 인용한 장수진의 시는 그의 시집에서 덜 난해한 한 편이다. 시는 이것은 현대미술이오니 현대자동차가 응원합니다는 광고 패러디 문장을 기준으로 두 가지 사건을 품고 있다. 앞의 사건은 한 아이가 후진하는 차량의 뒷바퀴에 치이는 사고를 서술한다. 그 아이가 가지고 놀던 나뭇가지는 사고 후 텅 빈 골목에 남은 흔적이 되고, 나뭇가지 위를 떠다니는 비닐봉지는 그 참혹한 사건을 일상으로 덮는 장치이다. 뒤의 사건은 301호 김 할머니로 시선을 바꾼다. ‘손주 신발을 뭉개고 앉아 있다는 언술에서 앞 사건의 죽음이 할머니에게 겹쳐진다. ‘말년의 명예운’, ‘흑백의 개’ ‘자타살 협동조합그리고 빈 봉지라는 단어들은 명쾌하지 않은 가운데 일상 속 죽음과 일상에 묻히는 죽음을 증언하는 것이리라. ‘영어 좀 하지? 이걸 어떻게 읽어? SSG’, ‘’ (신세계 쇼핑몰 SSGTV 광고 일부) 을 연상하게 하는 마지막 단어 역시 죽음조차 무미한 일상을 부각한다.

 

장수진의 인용 시에 신형철이 유형화한 언어의 전복 사례 셋 중에서, 1)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상투적인 연결을 일그러뜨리고인생이 반짝반짝 작살날 거야에 적용 가능하고, 3) “문장과 문장 사이의 논리적 접속관계를 꾸준히 헝클어놓는다는 시 전체 문장들에 적용 가능하다. 장수진의 많은 시들이 연 구분을 따로 하지 않고 모든 문장을 한 연처럼 간격을 두고 있다. 그것은 연과 연의 의미상 구획이나 문장과 문장 사이의 논리적 접속관계를 헝클어 놓으려는 시적 형식에 다름 아니다.

 

시도 텍스트이다. 그것은 쓰여지고 읽히고 비평된다. 문자를 무작위로 뒤섞지 않는 한, 시는 재미있고 아름답고 유의미한 것이다. 비평가 김현의 말을 흉내내면, 시는 단지 아름답고 단지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유의미하며 그 이상이다.

 

(2017.11.27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