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詩作)

수수께끼와 시, 다르지 않은 다름 – 것

진후영 2022. 6. 19. 22:54

것                  - 진후영

 --- 수수께끼1

 

꽃이 지는 건 바람 때문이 아니라지만

잊은 듯이 살다가

생일이면 다시 살펴보는 것

오래되어 탈색된 사진, 보기 싫어서

앨범에 꽂아두는 것

백 년을 나이 먹는 것, 그러나

비 오는 날에 혹시 씻겨 내려갔을까

뒤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멀리 있을수록 예쁘고

밝은 곳에서 더불어 밝지만

어두워도 감춰지지 않는 것

감춰지지 않아서 오독되는 것

슬플 때 위로할 줄 모르고

눈물 흘리며 기뻐하는

잊을 만해도 안 잊히는 것, 어느 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타나서

빚보다 밝은, 착각일 뿐

깃발처럼 나부끼는 것, 부끄러운 것

바람 부는 날 흔들리는 것

꽃이 지면 잊는 것, 잊히는 것

나이보다 더욱 늙는 것

바람 때문이 아니라지만, 꽃보다 빨리 지는

 

[시작 노트]

 

  목소리는 하나인데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로 되는 것은 무엇이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이다. 그 수수께끼는 환유 구조이다. 그것은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로 보행하는 인생, 그 인간을 환유하고 있다. 환유를 포함하는 비유는 새것이 아니면 지극히 상투적이고, 수수께끼 역시 풀고 나면 시들하기 그지없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행인들이 목숨을 걸어야 할 때마다 절정에 이르지만, 오이디푸스가 그 수수께끼를 풀자 질문자 스핑크스는 절벽 아래로 제 목숨을 내놓는다. 수수께끼 자체가 해체되는 것이다.

 

  시는 수수께끼와 다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는 인생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지혜가 보인다. 신탁(信託)은 언제나 수수께끼였다는 기록도 있다. 수수께끼는 만드는 자 못지 않게 푸는 자에게 상응하는 지혜를 요구한다. 수수께끼는 가장 오래된 교양의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시 또한 그러한가? 인생을 간단히 요약하는 신탁의 지혜, 비유와 교훈을 풀어내는 교양의 장르가 시 아니었던가? 그렇게 시를 정리한다면, 시와 수수께끼는 같은 급이다. 시에는 따로, 더 있는 게 있다. 수수께끼처럼 해석되지만 시는 완전히 해석되지 않는 문장이다. 수수께끼는 해석되는 순간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니지만, 시는 해석되어도 여전히 시로 존재한다. 읽을수록 읽히는 것, 해석될수록 해석될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 그것이 시다.

 

  끝없이 해석되는 수준에서 한참 못 미치겠지만, 수수께끼보다 나은 것으로써 내 시가 시가 되기를 기도(企圖)한다. 수수께끼보다 재미있고, 수수께끼보다 해석되고, 수수께끼보다 시가 될 수 있을까? 수수께끼 연작을 기획해 본다. 여기 [ - 수수께끼1]은 무엇일까? 을 풀어도 아직에 읽을 여지가 남아있을까?

 

  부족하겠지만 첫 연작을 내놓는다. 한 일년 열 편쯤 연작을 이어나갈 요량이다.

 

(2022.6.19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