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023

신화와 현실의 간격 2 – 이정훈, 용치는 남자

진후영 2023. 1. 28. 17:13

시집 『쏘가리, 호랑이』 창비시선 444, 2020.3.6

 

용치는 남자          - 이정훈

 

꼬리 밑을 만지면 심장이 푸르르 요동치고

잔뜩 굳어 있던 비늘이 흘러내린다

펜치와 드라이버가 그의 손

기름때 묻은 몇가닥 전선에

용들은 퉁방울눈을 내리깔고

진흙 묻은 발바닥도 조심스러워진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배 속의 돌을 꺼내려

밑을 활짝 벌리고 주저앉은 꼴이란 손가락 하나로

날아가게도 영원히 눈 뜨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면

커다란 덩치란 별게 아니지

그는 정원에 떨어진 수염 조각을 쓸어 담고

연못에서 비늘 조각을 주워낸다

개복숭아나무 그늘에 졸던 용이 비닐호스 물줄기에 놀라

덜 익은 복숭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저녁이 되면 온몸 가득 불을 밝힌 용들이

떼 지어 그의 동굴집 앞을 지나간다

거대한 공장의 활화산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는 석회석을 삼킨 뱃구레들이

털렁털렁 불과 연기를 흘리며

어딘가의 빈 분화구를 찾아간다

그는 동굴 문을 여미며 언덕을 쳐다본다

아침이면 밤새 날다 지친 용들이

또 정원에 와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인용시는 은유 구조이다. 트럭은 용이고, 트럭 수리점(인용시는 박달재 안전밧데리주인에게 헌사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은 무릉도원처럼 보인다. 현실이 신화로 은유되는 셈이다. ‘복숭아 꽃이 피는 마을’, 무릉도원(武陵桃源)에는 삼천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한 알 먹으면 천 년을 살 수 있는 복숭아가 열려야 한다. 개복숭아는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다. 과일을 얻지 못하고 그늘에서 용들이 쉬고 있다. 용들은 이상향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용이기는 한 것일까? ‘밤새 날다 지친 용들이란 빨리 달렸다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용들은 배 속의 돌을 담고 있으니 날지 못하고, 개복숭아 그늘에서 쉬고 있으니 천 년을 살지 못한다. 그들을 용이라 부르는 것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욕망일 뿐이다. 허망한 신화.

 

  현실은 욕망의 세계이다. 욕망의 극단이 신화에 닿을 수 있겠지만, 신화와 현실의 간극에 아득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와 현실의 사이를 용이라 불리는 트럭 모는 사내가 왕래하고 있다. 그가 현실의 트럭을 몰고 신화 속 쏘가리와 호랑이 혹은 용이 되려 하고 있다. 그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쏘가리도 호랑이도 하물며 용도 아닐 것이다. 현실을 버티는 그는 트럭 기사이다. 쏘가리도 호랑이도 하물며 용이 되기도 한다. 신화를 꿈꾸는 그는 시인이다.

 

(2023.1.28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