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023

청춘은 왜 아픈가 – 최백규, 휘파람

진후영 2023. 9. 5. 18:00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창비시선 469, 2022.4.25 초판 3

 

  윤리란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므로, 윤리를 가장 강력하게 비출 수 있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    테리 이글턴 저/전대호 옮김, 『유물론』, P119

 

  한 시대를 사는 일은 누구나 어렵다. 한 시대가 삼엄한 압제의 시대라서 어려웠을 수도 있고, 한 시대가 자유로운 경쟁의 시대라서 그러할 수도 있다. 가령, 80년대를 살아낸 사람들 가운데 이성복은 그 시대를 어렵게 살아낸 시인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이성복, [그날] 중에서)라고 현실을 모순되게 서술할 수밖에 없었던, 아니 직설할 수 없었던 그 문장이 그 곤란의 규모를 반증한다. 시제(詩題)이며 시에서 반복되는 그날이 언제인가, ‘그날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이성복을 조금만 알아도 다 안다. ‘그날에 일상을 살아냈을 뿐이라는 그 불감증을 뭐라 해야 할까? 그 문장은 삶의 부조리를 꼬집는 것 이상이며, 그 시대 두려움과 절망감에 몸서리치는 시적 고발이다.

 

  다른 시대, 최백규(1992-) 시인이 살아낸 시대는 2010년 언저리이다. 그가 대구에서 보낸 청춘이 어떠했을지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는 풍성하여 모두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당시는  아무도 아프지 않았는데 모두 병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시대. 그래서인지 시인이 또한 이상하다.

 

휘파람          - 최백규

 

불 꺼진

간판 아래

 

개가 쓰러져 있다 풀 먹인 옷처럼 정맥이 곧고 푸르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눈 뜨는 오후를

두려워하며

 

쓴 입맛을 다시는 개

피에 젖어

 

담배를 무는 개

촌스러운 음악을 틀고 골목을 휘청거리듯

 

사이비와 다단계에 빠진 개

기소유예로 풀려난 개

 

안개 낀

고가도로에 멀어져가는 구급차 사이렌처럼 희박한

 

개가

 

바람을 등지고 누워 있을 때

누구도 찾지 않았다

 

그러나

곧 올 것을 알았다

 

어질러진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잠들며

 

볕이 들기를

기다렸다

 

  자신을 동물에 비유하는 시들은 많이 있었다. 최백규(1992-) 시인의 도 그러한 비유의 하나이다. 그의 비유가 다른 점은 나는 개다라는 은유을 넘어서는 데 있다. 담배를 문다거나, 촌스러운 음악을 튼다거나, 사이비와 다단계에 빠진다거나, 기소유예로 풀려난다거나, 등등 다양한 양태들로 나타나고, 그런 양태들로써 화자는 자신만 이입하기 보다 자기가 익히 아는 친구들 모두를 대동한다. 화자를 대리하는 는 그렇게 은유를 넘어서 세태를 상징하고,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여 세태를 환유한다.

 

  인용시의 문장 하나하나는 뜬금없는 나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첫 시집 곳곳 다른 시들로 사건들이 구체화되어 있다. 그것들은 제 청춘 시절 방황과 그의 친구들의 청춘의 편력을 압축한 문장들이다. 그 시집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의문이 있다면, 청춘이 아픈 것, 그 시절이 청춘을 아프게 방기한 것은 알겠는데, 그 지향이 무엇이냐는 거다. 그의 문장의 표면에서 이성복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문장의 배면에서 이성복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성복이 그날을 고발하는 자세가 거기에 없다. 그는 이성복이 아니고, 이성복이 그를 통하여 갱신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그의 청춘이 아픔 이상일 필요는 있다.

 

  그 이상을 다음 시집에서 보여주려나?

 

(2023.9.5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