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024

기억하는 자는 외롭다 – 이범근, 과수원 수족관

진후영 2024. 1. 28. 14:20

시집, 『반을 지운다』, 파란시선 0013, 2017.7.29

 

  사람마다 잃어버린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소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것까지, 오늘 잃은 것에서부터 오래전 잃어버린 것까지, 살아있는 것에서 죽어 사라진 것까지, 잃어버린 것들은 아깝거나 안타깝거나 아프게 우리를 몰아간다. 외로움이란 바깥에서 오는 것이지만, 무언가를 잃어서 회복할 수 없을 때 다만 기억할 수 있을 때, 외로움은 안에서 자라난다.

 

  기억한다는 것은 구슬을 담은 그릇에서 어떤 구슬을 꺼내 들여다보는 사실의 되새김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로부터 감각을 되새김하는 일이고, 사실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기억할수록 사실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사실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기억하는 자를 외롭게 만든다. 회복할 수 없는 것은 잃어버린 것만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여기 잃어버린 것으로 외로운 시가 있다. 그 시는 잃은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외로운 그 규모를 느끼게 해줄 뿐이다.

 

과수원 수족관          - 이범근

 

어류에겐 통점이 없다는 말

수위가 아슬한 수족관 속으로

달빛을 들어 올린 나무 그림자가 잠긴다

나무는 살을 다 발라낸 물고기

가지가 꺾인 자리엔 촘촘한 물결의 기억이 있다

 

나뭇가지에 열린 물고기들

가지에서 가지로 흘러가는

열매들

낙과가 없는 수족관엔

발자국이 드물고

걸음을 잊은 나무들은

숨을 오래 참는다

죽은 자를 묻을 수 없고

그의 숨으로 떠올리는 곳

 

머리를 잃은 몸의 영법

물을 잃은 눈동자가 글썽이고

열매가 있었던 자리로

물살이 온다 물살은

제 뼈까지 다 울어 버린 살이어서

깊은 가시의 기억이 있다

물속을 흐르는 눈물

살이 깊어진다

 

  시의 문체를 묘사와 서술로 나누는 것은 편의적인 면이 있다. 묘사와 서술을 양 끝단에 놓고 보면, 그 사이 촘촘한 눈금 어딘가에 시들이 산포해 있을 것이다. 묘사의 특징과 서술의 특징은 이론처럼 그렇게 선명하지 않은 측면도 있고, 현대 시가 그런 문체적 특징에 주의하지 않는 성향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얻은 것은 현대시의 문체적 자유가 아닐까 싶다. 인용시는 묘사와 서술의 중간 지대에 걸쳐 있다. 과수원을 이미지화하여 묘사적이고, 그 대상보다 화자의 감각에 치중하여 서술적이다.

 

  묘사의 문체적 기반은 은유이다. 인용시는 과수원은 수족관이다,라는 은유 구조이다. 그 은유 구조 아래, 달빛은 물, 나무는 물고기, 열매들은 물결이며 기억,이라는 은유 조각들이 얽혀 있다. “죽은 자를 묻을 수 없고 / 그의 숨으로 떠올리는 곳은 과수원이며, 그곳은 기억의 장소이다. 기억은 묻어 가두는 곳이 아니라 떠올리는 곳이며, 구슬처럼 사실을 되새김하는 곳이 아니라 사실로부터 감각을 되새김하는 곳이다. 기억이 물결인 이유가 여기 있다. 물결은 출렁이고 천변만화한다.

 

  우리가 외롭다면,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데 있기보다 무언가 기억한다는 데 있을지 모른다. 기억한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것에 더 가깝다. 그 욕망은 상실된 것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기에 채워질 수 없다. 욕망하는 그 자리에 외로움이 온다. 외로움의 근본이 어쩌면 여기 있다.

 

(2024.1.28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