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024

결혼 축하, 행복하시라 – 진은영, 청혼

진후영 2024. 4. 26. 20:14

*

  내일 친구의 아들이 결혼한다. 가까운 친구이고, 나는 태어난 지 돌이 안된 그 아들을 안아본 적이 있다. 가난한 살림을 차린 단칸방에서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서투르게 흔드는 내 팔에서 안겨서 아이는 먹은 우유 - 젖이던가, 무엇을 입밖으로 살짝 게웠다. 마치 죄 지은 것처럼, 깜짝 놀라서, 나는 아이 입술에 묻은 액체를 닦았고, 아무일 없던 것처럼 아이를 보에 내려놓았다. 아비에게 아들의 기원은 어쩌면 이와 같다. 기쁨과 원죄 - 아들은 가장 아름다운 생명이라서 기쁨이고, 하염없이 감당해야 하는 삶을 넘겨주는 것 같아서 원죄이다.

 

*

  아들이 어른이 되는 때가 언제일까? 투표를 할 수 있다는 만 18, 군역을 마치거나 대학을 졸업하는 때, 직장을 잡아서 제 경제를 시작하는 때, 출근이나 어떤 결단으로 집에서 나가는 때, 모두 어른이 되는 때라고 주장할 수 있을 터이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무엇보다 생활에서 독립하는 어느 때부터 아들은 자신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리라. 해도, 아비가 아들을 어른으로 인정하는 때는 다르다. 아들이 어른이 되는 때는 아마도 결혼 이후이다. 투표를 하라고 등을 떠미는 때, 군대를 가서 집을 그리워하는 때,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여 부모에 자랑하는 때, 집이든 밖이든 식사나 청소, 빨래 그리고 무엇인가 부모에게 의지하는 때, 아들은 서른이나 마흔을 넘어도 어른에 못 미친다. 어른은 자신에게 돌봄이 필요치 않는 독립 상태이다. 오히려 누구에게 돌봄을 베풀 수도 있는 잉여 상태이다.

 

*

  내일 친구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린다. 그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간간히 보기만 했을 뿐이다. 잘 자란 그 아들이 성년을 넘은 것은 안다. 이른 결혼은 아니고, 시절이 그런 것처럼 아주 늦은 것도 아니다. 나는 잘 모른다. 그 아들의 신부를, 그들의 이력을 그리고 그들의 사랑의 규모를 모른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 이 식상한 환유가 그 아들과 신부에게 아주 먼 날까지 현실이 되기를 다만 기원한다. 오래오래 행복하시라. 아들이여, 너의 신부여.

 

*

  다른 상황이지만, 결혼에 앞서는 청혼의 시를 아래 붙인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슬프기도 한 이 청혼의 노래 이후 청혼한 신랑도 그 청혼을 수락했을 신부도 행복할 것을 믿는다.

 

청혼          -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

  ‘오래된 거리처럼하는 사랑은 뭔가 뭉클하다. 오래되어서 그렇고, 삶이 부대끼는 거리라서 또한 그렇다.

  밤하늘에 별빛이 흔들리는 것을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린다고 했을까.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가랑비가 내리고, 더운 날 그렇게 네 손바닥을 가랑비처럼 두드리겠다는 미세한 감정은 얼마나 사랑할 때 가능한 것일까.

  네가 말하는 한마디한마디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린다면, 소리는 작아도 사랑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밤하늘에서 별들이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내 귀속의 네 음성은 그 별들처럼 웅성거리는 조화는 사랑만이 만들 수 있는 마술일 터이다.

  [청혼]의 사랑은 오래된 사랑이다. ‘과거에 그랬듯 미래에도 아첨하지 않을게라는 말은 청혼의 서약이다. 신념을 갖고 살아왔고, 그렇게 살 것이라는 다짐이다.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라는 말은 어쩌면 사탕발림이다. 청춘이 혼돈이고, 혼돈과 방황을 거쳐 네 앞에 서서 반성하는 정도 사탕발림이 청혼할 때 없을 수 없다. 이후 너를 위하여 살겠다는 그런 서약쯤은 해야 청혼이 성사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I Do! I Do!

 

*

  행복하시라.

 

(2024.4.26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