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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마음속 어머니 – 박철, 건널목에서 시집 『대지의 있는 힘』, 문학동네시인선 220, 2024.9.9 “탈감정사회는 기계 숭배의 확장이며, 따라서 감정은 맥도날드화되고, 무정해지고, 판에 박힌 것이 되거나, 아니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왔다.”- 스테판 G. 메스트로비치 저, 박형신 옮김, 『탈감정사회』, P278 1. 탈감정(post-emotion)이라 번역되었지만, 그 책의 역자가 post를 ‘탈(脫)’이라 번역한 것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탈(脫)은 벗어난다는 뜻이지만, post는 after를 의미한다. 저자가 의미하는 post-emotion은 감정을 벗어난 어떤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용어로써 감정이다. 다만 “지성화되고 대량생산된 기계적 감정”(P65)이며, 시대와 환경에 획일화된 감..
청춘에게, 한가한 조언 – 이현호, 보통의 표정 시집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문학동네시인선 111, 2024.7.30 “21세기 한국의 청년세대는, 생존에 대한 불안이라는 기조감정과 서바이벌을 향한 과열된 욕망, 그리고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자기 존재의 가능성들을 전략적으로 계발하려는 집요한 계산으로 특징지어지는 독특한, 마음의 역동을 보여준다.”- 김홍중,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세대], 『사회적 파상력』, P263 * 26년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끝났다. 대개 선거가 그렇듯 결과는 기대나 예상과 딴판이다. 어떤 절묘한 균형감이 거기 있는 것도 같다. 여당이 패자 같은 승자가 되었고, 야당은 그 반대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이번 선거의 세대별 투표성향에서 보이듯이 20/30대 남성들이 보수를 지지하는 이상현상(..
소망 하나 - 문태준, 어떤 부름 어떤 부름 - 문태준 늙은 어머니가마루에 서서밥 먹자, 하신다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다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원뢰(遠雷) 같은 부름나는 기도를 올렸다,모든 부름을 잃고 잊어도이 하나는 저녁에 남겨 달라고옛 성 같은 어머니가내딛는 소리로밥 먹자, 하신다 원뢰(遠雷)는 멀리서 울리는 우뢰라는 뜻이다. '밥 먹자'라는 짧고 나즈막한 말씀이 먼 우뢰 같다는 뜻은 아들인 화자에게 어떤 울림이 남다르기 때문이리라. 모든 부름을 다 잃고 잊어도 '밥 먹자'라는 그 부름 하나는 매일 저녁에 남겨 달라고, 남기기고 싶다고 아들은 소망하지만, 세상의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고, 세상의 아들에게 그 시간은 너무 짧다. 잡을 수 ..
청혼의 최대공배수 – 안희연, 청혼 시집 『당근밭 걷기』, 문학동네시인선 214, 2024.12.5 진은영 시인의 [청혼](https://imhyjin.tistory.com/446)은 유명세가 있었는가 보다. 시집에 실리기 전에 이미 인터넷으로 알만한 사람들 마음을 흔들었다는 말이 있다. 그의 청혼은 시작의 약속이다. “내가 나를 찾던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먼 길을 돌아와서, 이제 피앙세가 되는 당신에게 그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하겠다고, 어떠한 삶도 감당하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안희연 시인의 [청혼]은 그와 다르게 끝의 약속이다. 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겠다는 통속한 서약이 그러하듯, 그러나 어둠과 슬픔이 더 많을 삶을 함께 지키겠다는 끝의 서..
그네 - 문동만 그네 - 문동만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그 반동 그대로 앉는다그 사람처럼 흔들린다흔들리는 것의 중심은 흔들림흔들림이야말로 결연한 사유의 진동누군가 먼저 흔들렸으므로만졌던 쇠줄조차 따뜻하다별빛도 흔들리며 곧은 것이다 여기 오는 동안무한대의 굴절과 저항을 견디며그렇게 흔들렸던 세월흔들리며 발열하는 사랑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누군가의 몸이 다시 앓을 그네 비 오는 봄날, 책 읽다가 발견한 시 한 편. 2000년대 ‘노동시’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데, 황규관, 문동만, 김사이가 그러하다는데, 그중 문동만은 “삶-상처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냄으로써 희망을 타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봉준, 『비인칭적인 것』, P379)고 한다. 아파트나 동네 공원에서 그네..
우울한 시인과 유쾌한 독자 – 이윤설, 오버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문학동네시인선 163 “기형도 시집은, 펼쳐 읽기 이전에 이미 비통한 물신으로 나타난다. 부당하게 여겨지는 죽음, 그 젊은 얼굴과 무관하게 기형도를 읽을 수가 없다 (…) 작가의 삶은 작품의 의미론적 질감을 변화시킨다. ‘어떻게 사느냐’가 ‘무엇을 썼느냐’를 규정한다 (…) 시인은 시를 쓰지 않을 때조차 사실은 시를 쓰고 있는 셈이다.” - 김홍중, [은둔기계], P133 이윤설(1969-2020) 시인에 대해 읽은 것은 나희덕 시인이 보낸 [우리는 시를 사랑해](문학동네 이메일 레터) 편지를 통해서다. 이윤설 시인의 5주기를 기념하여 그를 기억하고, 그의 시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2004년 희곡으로 등단하고, 2006년 시인으로 또한 등단한 그는 지병..
시적 르포와 르포적 시 – 정병근 박스리어카 장 씨, 기형도 죽은 구름 시집 『우리 동네 아저씨들』, 사유악부 시인선 05, 2024.6.25 “혼자서는 어떤 이야기도 그리 멀리까지 이끌어갈 수 없다.”- 베리 로페즈, 『호라이즌』, 창비2025가을에서 재인용 시집에는 어떤 정형이 있다. 시집은 보통 46판(B6) 작은 규모, 두께 1센티미터 남짓, 수록 시가 오륙십 편 정도, 해설이 뒤에 붙어서 시인과 시의 경향을 설명하는 형식이다. 평론가의 해설이 없는 시집도 있는데, 젊은 시인의 투지(?)인지 무명 시인의 평론가 구인난(?)인지 내막을 알기는 어렵다. 시집에는 어떤 경향이 있다. 잘 기획된 시집이 대표적이다. 멀리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그런 사례이다. “(『악의 꽃』은) 발단, 조직적인 진행, 종말을 가진 하나의 전체로 만들고자 했다는 (…) 유럽 ..
오래된 꿈을 꾸는 시 – 김승기, 방 시집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시학 시인선 007, 2015.6.5 “진정할 수도 없고, 진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시대, 그것이 바로 포스트-진정성 시대의 아포리아이다.” (aporia: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김홍중, [진정성의 기원과 구조], 『마음의 사회학』, P45 ‘마음이란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라는 문장을 인용한 책에서 읽고, 그렇구나 잊은 것을 찾은 듯 기뻤다. 김홍중은 ‘마음의 레짐’(마음의 체제)이라고 마음의 공공적 성질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마음의 레짐’이 전복되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진실이고 사실인 것 같다. 마음이 체제라면, 정권이 무너지듯 새 정부가 들어서듯 시대에 따라 바뀐다고 이상하지 않다. 헌 마..
내 마음의 소유권 – 이규리, 겨울 꿈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시인선 151, 2025.1.20 “마음이란 결국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 사유하는 물건이 아니라 공유하는 매체가 아닐까?”-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P5 중국 선종의 육조(六朝) 혜능(638-713) 선사의 일화 중에 풍번문답(風幡問答)이 있다. 두 젊은 스님이 바람과 깃발을 두고 논쟁하고 있었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라는 주장과 깃발이 흔들려 바람이 부는 것이라는 주장이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혜능 선사는 둘을 불러 흔들리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니고, 마음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자연현상을 적당히 이해하는 현대인에게 그 풍번문답 논쟁은 억지 우화 같다. 바람이 불어 깃발이 흔들리는 ..
철학자의 입과 시인의 입 – 남현지,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시집 『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 창비시선 511, 2024.12.27 “소통은 한 주체가 자신의 주체 자리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자리로 자리바꿈을 하려는 그 순간 발생하는 것이며 그 순간에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진은영, [소통, 그 불가능의 가능성], 『문학의 아토포스』, P302 진은영의 책 『문학의 아토포스』 (그린비, 2015.4.15)는 연구 소논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창비 142호에 발표되어 문학과 정치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던 [감각적인 것의 분배 : 2000년대 시에 대하여]를 비롯하여 2008년부터 2013년 사이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학술적 소논문들이 집합되어 있다. 진은영 책을 몇 권 이미 읽어본 기대에 비추어보면, 번쇄한 이론에 치여 대중성은 아예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