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018 (20) 썸네일형 리스트형 뿌리 깊은 나무가 샘에 비치다 – 오규원, 아침부터 소화가 안 되는 얼굴을 한 꽃에게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 시인선 4, 2016.12.9 “재즈에게서 대중들을 빼앗아간 새로운 문화가 등장한다. 바로 로큰롤이다 (…)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로큰롤에 후대 역사가들은 꼭 혁명revolution이라는 말을 붙여서 ‘로큰롤 혁명’이라고 한다 (…) 로큰롤이 혁명적인.. 영감을 죽여야 새살림 난다 – 오규원, 그 이튿날 시집 『분명한 사건』 (문학과지성 시인선 R11, 2017.2.2) “영감은 대개 언어화되지 못하거나, 언어화되었을 때 일그러지기 일쑤다. 아니면 언어의 스스럼없는 체조에 자리를 빼앗긴다. 때로 영감은 구태이기도 하다.” (이수명, 『표면의 시학』, 20) 그 이튿날 - 오규원 바람이 불고 간 그 이.. 새로운 것과 재미있는 것의 간격 – 황혜경, 검은 외투를 하나 갖는 일 시집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6, 2018.5.25) “시는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것이기보다는 프런티어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프런티어가 바로 현대성이라 할 수 있다. (…) 시의 현대성, 그것은 시를 미개간지에 서게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수명.. 시는 야구공일 수 없나 – 김학중, 저니맨 시집 『창세』, (문학동네시인선 093, 2017.4.30) 저니맨 - 김학중 그는 유망주였다 공을 쥘 때마다 세계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다고 느꼈다 심장이 담장을 넘어갈 때마다 모자를 고쳐 썼다 자신의 삶이 실점에 대한 기록임을 지켜봐야 했지만 그는 끝까지 배트를 잡지 않았다 - 누구도 자신을 위해 타석에 설 수 없다고 낮게 얘기했을 뿐 - 그리고 긴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는 이제 큼직한 여행 가방을 끌고 플랫폼에 서 있다 불쑥 내뱉고 싶던 말처럼 가방의 터진 겉감 사이로 안감이 비집고 나와 있다 그 안에 그의 여행이 온전히 담겨 있다 언제부터 입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바지 몇 벌과 셔츠 몇 벌 유니폼만이 새것인 채로 매번 바뀌었다 그의 짐은 매일 다시 첫 장부터 쓴 낡은 일기장 몇 장을 뜯어냈는지 알.. 서정 옹호 – 김학중, 열린 문 시집 『창세』, (문학동네시인선 093, 2017.4.30) “김학중의 첫 시집 『창세』는, 우리 시단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언어적 스케일과 형식을 갖춘 이색적 결실이다. 이 시집은 두 가지 점에서 배타적인 개성을 보여준다. 하나는 시인이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비평사적 화두를 제공해온 이른바 ‘미래파’와 같은 세대이면서도 그들로부터 미학적 거리를 크게 두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한국 현대시의 주류로 기능해왔던 ‘단형 시편’의 흐름과도 확연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성호, 시집 뒤 [해설] 중에서) 열린 문 - 김학중 도시의 지도엔 그저 커다란 공백으로 그려져 있다 누가 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연 적 없지만 문이 아닌 그 문은 열렸다 방음벽 뒤에서 바람에 뼈를 맡.. 시라는 공룡에게 – 강성은, 동지와 여름일기 시집 『Lo-fi』,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2018.6.29 “은유를 멀리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사물은 인간과 연결되지 않고, 인간에 동원되지 않고, 사물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수명, 『표면의 시학』, 56) “(모든 시는) 새로운 감각, .. 가까운 것의 규칙 – 박신규, 반지하 바다 시집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 창비시선 415, 2017.12.21 반지하 바다 - 박신규 빗소리는 늘 비릿했고 축축한 햇빛은 짧지만 아늑했다 밤늦게까지 함께 일하고 함께 가난해도 좋았다 한밤 인쇄소 소음과 두통을 벗어놓고 ‘파주상회’ 지나 ‘헌책’과 ‘철물점’ 지나 비탈진 ‘물망초.. 기억하는 자는 슬프다 – 박신규, 가수리2 시집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 창비시선 415, 2017.12.21 가수리2 - 박신규 온통 물들었다 천년 느티나무 아래에도 물이 올랐다 아리고 부시다는 여자의 얼굴에서 봄빛을 쓸어내던 사내 갑자기 입을 맞춘다 저만치 벤치에 앉아 이 연놈들 두고 보자 두고 보자며 지팡이를 쥔 염소수염 노.. 알레고리와 알레르기 – 김언, 마음이 시집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문학동네시인선 102, 2018.3.28) “알레고리는 우리 시에서 빼어난 시편들을 낳은 주요 동력이다 (…) 이성복은 첫 시집에서 ‘가족’ 알레고리로 당대 사회의 고통을 시화했으며, 최승자는 ‘버림받은 연인’의 알레고리로 그것을 드러냈다. 황지우의 패.. 소박하나 중요한 – 이산, 아일랜드식 사직서 시집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창비시선 416, 2017.11.3) 아일랜드식 사직서 - 이산 불길에 휩싸인 은신처를 어린 고라니 한마리가 홀린 듯 뒤돌아보고 섰습니다 어쩌다 이곳에 발을 담그게 되었던 걸까요 막무가내로 들이쳐 등줄기를 적시는 비 눈발들 소복하게 쌓였다 흩어지..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