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씨에게, 그중에 제일은 건강입니다 – 차정은 [토마토 레시피]
시집 『토마토 컵라면』, BOOKK 2024.4.8 1. 제수씨, 형제가 사는 모양이 서로 달라서 더욱 가까워지기 쉽지 않습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살고, 경제적으로 완전 분할되고, 공통분모라야 부모라는 거의 썩은 토양만 남아서, 명절 같은 집안일에나 겨우 보면서 서로 마음을 나누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고운 부모든 미운 부모든, 부모는 역할을 해서 부모이고, 또한 존재했고 존재하여 부모이기도 합니다. 우리 부모는 역할보다 존재하여 그저 부모였다는 점에서 형제에게 허물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이제 어머니 없고, 아버지 요양원에 정신을 놓아서, 역할 없는 부모 자리조차 빈 자리로 남았습니다. 빈 자리는 이상하게도 비어 있어도 자리입니다. 부모가 있을 때 역할 없었고, 없을 때 허물이었지..
세상을 바라보는 최적의 시선, 연민 – 김사인, 노숙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2024.5.16 초판 30쇄 “화자가 청자나 제재에 대해 취하는 특정 태도를 어조라고 부른다.” - 권혁웅, 『시론』, P165 김사인(1955-) 시집을 읽는 일은 오래된 상자를 열어보는 일 같다. 나의 할머니 돌아가시고 수십 년 후, 고집 센 아버지 쓰러지시고 몇 주 후, 오래된 집 세간과 잡동사니를 정리하던 중 마루 문틀 위에 얹혀 있던 작은 나무상자를 열어본 일이 있다. 먼지가 두텁게 내려앉아 있는, 값진 것을 기대하기에 너무 늦은 것 같은, 손에 느껴지는 가벼움으로 빈 것 같은 나무상자였다. 낡고 흐릿한 문양이 새겨진 뚜껑에서 먼지를 불어내고, 앞면에 걸린 자물쇠 고리를 젖혀서 열어보았다. 비단천에 싸인 지폐 몇 장이 있었다. ..
환유적 시, 은유적 시 그리고 시적 시 (2) – 김언희 [허불허불한], 채길우 [분재]
“레이코프G. Lakoff와 존슨M. Johson도 은유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라고 보았지만, 이들에게서 은유는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권혁웅, [한국 현대시의 시작방법 연구] P18 그리고 은유적 시, 막기차를 놓치고저녁을 때우는 역 앞 반점들기만 하면 하염없이 길어나는 젓가락을 들고벌건 짬뽕 국물 속에서 건져내는 홍합들…… 불어터진음부뿐이면서 생은, 왜외설조차 하지 않을까골수까지 우려준 국물 속에서끝이 자꾸만 떨리는 젓가락으로 건져올리는허불허불한 내 시의회음들, 짜장이더글더글 말라붙어 있는 탁자 위에서일회용 젓가락으로 지그시벌려보는, 이상처의 모독의 시, 시, 시, 시울들…… - 김언희, [허불허불한] 인용시는 막기차를 놓치고 중국집에서 혼자 저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