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 2016.10.21)
정치하는 시인이 있고 저항하는 시인이 있다. 정치와 저항은 둘 다 현실을 대상으로 삼지만, 태도에서 상극처럼 다르다. 저항하는 시인은 변명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현역 시인 가운데 송경동(1967-)은 제일가는 저항 시인이고, 그의 시는 정치를 일갈한다. 저항하는 시인으로서 그가 가진 자산은 변명할 필요 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도종환(1955-)은 정치하는 시인이다. 정치하는 시인으로서 그는 자기 변명을 한다. 정치는, 소돔에서도 열 명의 의인을 구할 가능성처럼, 그곳에 몸담는 자체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정치하는 시인이 변명하는 이유는, 잘못 날아가고 있지 않는가 하는 반성뿐 아니라, 정치가 워낙 진창인 현실 탓이리라. 진창으로 들어갔으니 흙을 안 묻힐 수 없다. “집을 고쳐 지으려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지난 사년간 온몸에 흙을 묻히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이 시들을 썼습니다.” (시집 뒤 [시인의 말] 중에서)
이번 시집은 그렇게 도종환 시인이 정치하는 자기 변명이다.
[폭포] - 도종환
숲에서 나를 본 적이 있는 짐승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강물이었을 때의 내 목소리와 얼굴빛을 기억하는 이들은
애써 나를 외면하려 한다
키 큰 삼나무들과 내가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말하며
실망스러워하는 낯빛이 역력하다
물의 심성은 본래 고요하고 목청 또한 거칠지 않다
낮에도 매발톱꽃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기를 좋아하고
산양처럼 번거로운 곳을 피해 혼자 있는 걸 편하게 여긴다
내가 한때 격류였다는 걸 아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바위와 돌들로 가로막힌 시대를 지나며
격류 아닌 물줄기가 어디 있는가
그때는 바늘잎을 가진 나무도 활엽수도
내심 우리 편이라는 걸 숲은 출렁이는 그늘로 보여주었다
나는 간혹 뒤처지거나 순발력이 떨어질 때도 있고
너럭바위에 허리를 다쳐 계곡에서 은거한 적이 있으나
배반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 내가 폭포가 되어 소리치며 가는 것은
벼랑을 만났기 때문이다
곧게 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거칠다는 것과 결정적인 순간을 받아들인다는 것의
차이를 폭포는 안다
모든 폭포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폭포는 안다
이끼 낀 계곡을 지나고 바위를 때리며 멍이 들 때가 있었으니
모래톱을 끼고 천천히 감돌아 갈 때도 있을 것이다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서 한생을 인계하며
거기까지 가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르겠지만
거기까지가 강물이다
도종환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정치하는 일과 시인하는 일이 투잡(two job)이 되기 어려운 엄혹한 현실을 엿본다. 도종환 시집은 잘 훈련된 언어의 무게가 있다. 대상을 통하여 말하는 의인(擬人)이나 이입은 그의 시가 좋은 서정시인 것을 알게 해주고, 상징과 은유가 넘치는 기교는 뛰어난 시적 미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상상력은 대상을 간단히 서술하는 것을 넘어 무진(無盡)한 시선을 나열한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들은 시인의 훈련된 언어 감각이다. 시는 훈련된 그 이상을 요구한다. 그것을 낯섦이라 부를 때, 도종환의 시집은 그저 익숙하다.
위 시 [폭포]는 잘 훈련된 시의 언어를 보여준다. 시에 쓰인 모든 대상들, 가령 폭포 숲 짐승들 강물 바위와 돌들 나무 바다 들은 은유(은유와 상징은 인척이다. 원관념을 떼어낸 은유가 상징이다)적 개념을 지닌다. 숲은 시의 세계일 것이고, 강물은 시인의 삶으로 읽을 수 있다. 폭포는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현재 정치인의 삶이다. 이 시는 의인과 이입을 잘 활용하고 있고, 상징과 은유는 직관적으로 읽힌다. 시의 중심 이미지는 물이다. 물은 본래 고요하고 한때 격하고 숲의 그늘에서 출렁이고 벼랑에서 떨어지고 거칠고 바위를 때리며 멍이 들기도 한다. 물은 인간 일반이 아니라, 시인 자신을 한정하는 개별적 인간성을 나열하듯 보여준다. “거기까지가 강물이다”고 할 때, 시인은 제 삶을 시로써 정치로써 본래 같은 물줄기라고 강변하고 있다.
도종환 시인이 정치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다. 정치하는 가운데 흙을 묻히며 번듯한 집을 지으라고 응원도 하고 싶다. 시인들 가운데 더러 정치를 한 이들도 있다. 그들이 정치에서 이루고 얻은 것은 차치하고, 그들이 정치하는 동안 시에서 얻은 것이 있을까? 우리가 얻은 것은 흙 묻히는 정치인이고, 우리가 잃은 것은 좋은 시인이라고 한다면, 내가 보기에 그 셈법은 손해 쪽으로 기운다. 잘은 몰라도, 정치판은 어중이떠중이 모일 수 있다. 그러나, 시는 그런 게 안 되는 세계이다. 까짓 국회의원 하나 건달이 있어도 좋지만, 시인만은 제격으로 갖고 싶다.
(2017.3.15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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