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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이야기 2017

악어가 눈물 흘리는 이유 – 이설야 [신흥여인숙- 다락방]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창비시선 405, 2016.12.12)

 

[신흥여인숙- 다락방]          - 이설야

 

내 푸른 다락방에는 악어가 산다

 

별들의 지친 눈꺼풀

몇 년째 풀지 못한 짐들

종이 한장도 너무 무거워

아무것도 꺼내보기 싫던 다락방

 

늙은 주정뱅이들 노란 지폐 같은

옆집 늙은 여자들 수챗구멍 같은 입속

이끼 낀 수초들이 춤추던 곳

날마다 함께 구겨진 방들

 

뱀의 아가리 같은 족속들

간신히 연명하다 숨 끊는 구공탄 같은

미나리 속 거머리처럼 우글거리는 가계들

잘못 맞춘 주파수 때문에

날마다 지지직거린다

 

낡은 책에 그어놓은 빨간 밑줄

접어둔 페이지, 해풍을 수집하던

젖은 나비가 숨어 있던 다락방

 

아직도 자라느라 들썩거리는

장님이 되어가는 악어들의 푸른 다락방

 

이설야 (1968-) 시인의 첫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는 낯선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시가 낯선 게 아니라, 시가 품은 이야기가 낯설다. 시집에서, 시인은 분명 제 삶의 상반기를 되짚어 보고 있다. 그의 이야기가 낯선 것은, 마치 르포를 쓰듯 제 삶을 기록한다는 게 하나이고, 70년대(그리고 80년대)를 통과하는 그 이야기가 그저 회상일 리 없다고 의아하게 되는 게 또 하나이다. 2017년 지금 세상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지만, 어두운 구석까지 달라졌을 리 없다. 그의 시집이 르포하는 것은, 제 삶이 통과한 그 시절뿐 아니라, 그리 멀지 않은, 아니 지금 여기 현실일 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는 좀 늦게 등단(2011-43)했고, 더 늦게 첫 시집(2016-48)을 낳았다. 난산이 분명한 삶, 그 시집이다.

 

위 시는 그 가운데 수사적 윤색을 많이 덧댄 한 편을 고른 것이다. 여관에 못 미치는 여인숙, 그 제일 구석진 다락방이 시가 말하는 기억의 장소이다. 시는 삶의 무게를 대상들에 빗대어 말한다. ‘별들의 지친 눈꺼풀’, ‘몇 년째 풀지 못한 짐들’, ‘날마다 함께 구겨진 방들’, ‘잘못 맞춘 주파수’, ‘간신히 연명하다 숨 끊는 구공탄등등, 그 대상들은 여인숙에 얽힌 인생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하는 비유들이다.

 

‘내 푸른 다락방에는 악어가 산다’. 그 여인숙 제일 구석진 다락방에 산다는 악어는 무엇을 상징한다. 악어는 강한 육식성 동물이고, 악어가 다른 생명을 잡아먹으며 눈물 흘린다는 고사(故事)에 비추어 보면, 시가 말하는푸른 다락방에 사는 악어는 시인을 잡아먹은, 시인의 삶을 지배하는, 그 눅눅하고 강렬한 기억의 세계로 읽을 수 있다. 악어가 잡아먹은 양식(糧食)은 시인의 유년이고, 그 유년의 기억은 르포 같은 시집을 낳았다. 악어는 푸른 다락방에서 기어나와 시가 된 셈이다.

 

시인이 통과한 70년대는 70년대 이후에 이미 문학이 통과한 시대이다. 여러 소설들이, 시인들이 그 시대를 때로는 고발로, 때로는 저항으로, 서정으로 통과했다. 새삼 시인이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제 삶이 버거웠다는 고백이 아니라, 제 삶이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개인사일지라도, 사회의식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 70년대가, 그 궁핍이 치유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시집 다음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짐작되는 부분이 여기이다.

 

제 역사를 르포하였다면, 이제 지금 여기를 르포할 차례 같다.

  

(2017.4.19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