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 2015.4.10)
감동이 다가오는 갈래는 여럿일 거다. 눈물 나는 감동의 순간을 누구나 몇 가지씩 기억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감동은 받거나 주는 것이다. 감동은 타인과의 관계, 그 사이에서 온다. 시를 읽는 일도 시로부터 감동을 받는 일도 그 사이를 보는 일이다. 시가 담고 있는 풍경이 있고, 시를 읽는 눈이 있다. 그 사이에서 풍경은 부풀어 오르고, 독자는 시로부터 부풀어오르는 풍경을 본다. 그 풍경은 시 자체가 아니라 부푼 무엇이다. 시가 상상하고 독자가 상상하는 그 사이, 거기에 감동이 있다. 시가 부풀리고 독자가 부풀리는 그 사이, 시의 감동은 터진다.
박소란의 시집에는 그와 같은 사이의 감동이 많다. 그의 시들은 노래하는 듯하고, 그림 그리는 듯하고, 무엇보다 제 노래와 그림을 스스로 감상하는 듯하다. 시인 스스로 감상하는 그 정서는 낯설지 않다. 쉽게 독자를 끌어들인다. 독자는 그 풍경에 끌린다. 그 풍경 속 목소리에 대답하게 된다.
‘여기 잘 있습니다’.
[정전] - 박소란
옆방 102호, 그 아무개를 알게 된 건
이슥한 밤의 일
해독할 길 없는 어둠과 어둠 사이
아득한 적요로 우거진 공중(空中)
불현듯
콘크리트 벽 저편으로부터 내솟는
한줄기 거센 오줌발, 아
이는 분명
산 자, 살아 펄떡이는 자의 소리
기원을 잃어버린 어느 짐승의 긴한 울음소리
어쩌면 그는
맨눈으로 뒤척이다 깨어 속수무책
이 밤의 맹기를 견디는 자임을
길을 헤매던 낮 속에 피 흘리고 상처 입은 자임을
그래, 어쩌면 그 또한
황야의 낯선 동굴을 홀로 찾아들 듯
이역의 단칸방에 불을 놓고 허성한 밥상을 차렸으리
그 위 한그릇 식은 밥이 남몰래 몸살을 앓았으리
벌거벗은 굉음은 방 안 가득
뭉클한 미명을 드리우고
굳게 걸어잠근 이부자리 한켠 제풀에 어려 흥건한데
이제 나는
쇠한 짐승의 마지막 발톱을 세워 똑똑
그 벽에 노크를 하니
거기 있습니까
웅크린 흐느끼던 집들 반짝 고개 들어
도시의 하늘을 올려다볼 때 총총히 여문 귀를 가져다 댈 때 거기,
거기 잘 있습니까
한 아파트 단지 내지 연립주택 혹은 고시원이든 그런 곳에 몰려 사는 일은, 소통하지 않아도 비슷한 종족이기 쉽다. 직업과 성격과 태생은 전혀 다를지라도 생활수준은 거기서 거기일 거다. 삶의 궤적도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벽을 하나 맞대고 산다는 일은 공감을 나눌 가능성이 어디보다 높겠지만, 그게 현실이 될 가능성은 그러나 거의 없지 싶다.
시인이 이슥한 밤에 옆방 소리를 듣는다. 거센 오줌발, “아득한 적요로 우거진 공중(空中)”에 “살아 펄떡이는 자의” 그 불경(不敬)한 소리가 시인을 깨운다. 남의 몸의 소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듣기 어렵다. 하품소리, 트림소리, 방귀소리, 오줌소리까지, 대개 몸의 소리는 가까운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에티켓이다. 그래서 “벌거벗은 굉음”을 듣고 시인은 그와 맞닿는 벽을 두드리지 않을 수 없다. “거기 있습니까” 묻는다. 그리고 “거기 잘 있습니까” 다시 묻는다. 거기 있습니까, 부터 거기 잘 있습니까, 까지 점증되는 그 타전(打電)은 아득한 적요로 우거진 공중(空中)을 깨운다. 아니, 잠들어 곤한 우리까지 깨운다.
박소란의 시집이 아름다운 이유들을 이 시는 다 품고 있다. 그 가운데, 그의 은유가 매우 업그레이드되어 있는 것을 지나칠 수 없다. 이 시에는, ‘오줌발, 그, 나’가 주요 은유 대상이다. 그 가운데 ‘오줌발’ 만 골라본다.
A : 오줌발
B : 살아 펄떡이는 자의 소리, 기원을 잃어버린 어느 짐승의 긴한 울음소리, 벌거벗은 굉음, 뭉클한 미명, 이부자리 한켠에 제풀에 어려 흥건
은유를 연구하는 두 줄기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고전적 은유론과 리콰르(Paul Ricoeur)를 중심으로 한 해석학적 은유론이 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은유를 ‘이름’ 혹은 ‘단어’의 차원에서 정의했고, 그 단어의 은유적 의미가 ‘유사성’과 ‘대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반면, 리콰르에 따르면, 은유의 장소는 단어만도 아니고 문장만도 아니다. 언어에서 은유의 장소는 ‘단어들과 문장들 사이’에 있다고 한다. (오형엽, 문학과 수사학, 329-352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요약한 것임)
이 시는 고전적 은유론과 해석학적 은유론을 모두 적용해 볼 수 있다. 매우 상식적인 은유 형식인 ‘A는 B’가 바로 단어 차원의 고전적 은유론이다. 위 시에서 오줌발이 몇 가지 소리로 서술되는 것들(살아 펄떡이는 자의 소리, 울음소리, 굉음, 미명, 흥건한 것)이 그 단어 차원의 은유이다. 그러나 그 오줌발은 다른 소리나 물성(物性)으로 단순히 대체되어 의미를 구체화하는 것 이상이다. 가령, “아득하고 적요한 공중(空中)”에 “콘크리트 벽 저편으로부터 내솟는” 그 소리는, 주체(그)가 매우 고립되고 고단하다는 현실을 지시한다. 따라서, 그 소리는 단순히 오줌발이 ‘살아 펄떡이는 소리’로 전의(傳疑, 바뀜)되는 정도를 넘어, 고단한 현실 가운데 ‘살아 펄떡이는' 자의 소리로 의미가 확장된다. 그 확장은 그 단어들과 그 문장들 사이에서, 감동처럼 온다.
그 아득한 적요로 우거진 공중(空中)에 살아 펄떡이는 소리에, 그 처연한 울음에 귀 기울이다 시인은 묻는다. 거기 있습니까, 거기 잘 있습니까?
우리는 안다, 여기 잘 있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래도 시인에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잘 있습니다!
(2015.7.27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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