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녹턴』 (문학과지성사, 2016.4.11)
사람이 짝을 이루어 산다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요즘 결혼이 어려운 경사가 된 것은 거의 경제적 이유일 뿐, 사람이 짝을 이루고 사는 일은 여전히 평범하다. 김선우 시인의 시집에서 읽을 수 있는 사랑 역시 평범하다. 너무나 평범하여 오히려 비상(非常)하다. 가령,
“반쪽 빛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반쪽 어둠을 찾아 영접하는 것이다” (12)
“당신이 내 마음에 들락거린 10년 동안 나는 참 좋았어” (21)
“네 몸에 남았을 내 포옹의 흔적처럼” (50)
“섹스는 몸의 대화 / 통하는 몸들의 기쁨” (57)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노동” (64)
“열렬히 노동해야지 / 영혼을 다듬는 거야” (90)
“내가 당신을 껴안으려면 / 당신은 내가 아니어야 합니다.” (96)
사랑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것은 사랑의 한계에 대한 긍정이다. 당신이 내 마음에 들락거린 10년 동안 참 좋았다는 고백은 그러한 사랑의 한계를 고백하는 셈이다. 모든 사랑이 결국 상실을 예정하듯이 그 사랑 역시 10년이라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몸으로 한다. 사랑은 몸으로 하는 노동이며, 통하는 몸들의 기쁨이다. 그 열렬한 노동을 통하여 서로 영혼을 다듬는다. 사랑은, 당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내가 아니어야 한다는, 아이러니이다. 그래야 당신을 껴안을 수 있다. 당신은 내가 아니라는 지극한 사실 - 사랑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 분명하다.
[시집] - 김선우
벗지 않고 어떻게 너를 만나니?
벗지 않고 어떻게 나를 만지니?
누군지 모른 채 동침할 때도 있다
모르는 너인데……입가에 묻은 하얀 침 자국……젖었다가 마른 흔적이 문득 좋아서……아득히 오래 운 적이 있다
모르는 이와의 동침이 자주 일어나는 이런 몸,
상스럽고 성스러운
음란의 책
위 시의 대상은 사랑이다. 사랑도 종류가 있고, 그 가운데 서로 몸을 나누는 남녀간 사랑이 으뜸이다. 사랑은 벗고 하는 노동이다. 누군지 모르겠는 당신과 동침이다. 사랑은 입가의 침 자국 같은 것조차 문득 좋아 보이는 사소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너를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이와의 동침 같아서 상스럽고, 여전히 사랑해서 성스럽다. 사랑하는 몸은 음란의 책이다.
그런데 시 제목이 [시집]이다. 상스럽고 성스러운 것이 사랑이고, 시도 그와 같다고 시인은 주장하는 듯하다.
“시를 기다린다 영원을 부정하자 사랑이 오듯이 영원을 부정해야 사랑 비슷한 것이라도 오듯이” (128)
시인은 말한다. 시는 사랑 같은 것이다. 사랑이 몸의 노동이라면, 시 또한 몸의 감각이다. 영원을 부정하면 사랑이 오고, 그와 같이 시도 또한 온다. 영원을 부정한다는 것은 지상의 몸의 행위를 긍정한다는 말이다. 사랑도 시도 지상의 몸의 갈증 아닌가?
사랑은 몸의 행위이다. 시 또한 몸의 감각이다. 시인에 아주 동의한다.
(2016.7.21 진후영)
'시시한 이야기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항을 통과한 슬픔 – 김사인 [오월유사]와 [8월] (0) | 2016.08.01 |
---|---|
소소하게, 치밀하게 – 김사인 [바짝 붙어서다] (0) | 2016.07.26 |
주체는 대상이 만든다 – 김선우 [한 방울] (0) | 2016.07.16 |
공평한 세상에 살다 – 마종기 [이슬의 애인] (0) | 2016.07.13 |
도발적 언어, 변태적 상상력, 그리고 선어(禪語) - 김언희 [회전축]과 [보고 싶은 오빠] (1) | 2016.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