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녹턴』 (문학과지성사, 2016.4.11)
“자아는 주체의 거울 이미지에 불과하다” (권혁웅, 시론, 37)
새천년이 열리고, 한국 현대시에 새로운 기운이 생동했었는가 보다. 그 물결을 '뉴웨이브'니 ‘미래파’니 뭐라 부르든, 거기서 읽을 수 있는 변화 가운데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자아에서 주체로’ 시선이 바뀌었다는 것 같다. 그 변화는 쓰는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읽는 관점에서 역시 ‘자아에서 주체로’ 시선을 바꾼다. 쓰는 관점, 즉 시인들이 새로운 주체를 제 시에 드러냈고, 읽는 관점, 즉 비평의 시각에서 주체에 주목하게 된 것 같다. 독자 역시 읽는 관점에서 ‘자아에서 주체로’ 시선을 바꿀 필요가 있다.
자아(에고)란 무엇일까? “에고는 일종의 대상이다. 의식은 타인을 바라보듯 자신을 바라본다.” (36)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아라고 한다. 그 거울상은 눈에 보이는 다른 사물처럼 대상화된 자기이고, 그렇게 대상화된 자기가 자아이다. 주체란 무엇일까? “주체는 대상에 종속되고, 이미 대상의 일부인 대상이며, 대상들의 장을 마름질하는 가정된 중심이다.” (31) 자아란 대상의 하나이고, 대상끼리의 관계에서 주체가 형성된다.
다시 말하면, 새천년 이후 한국 현대시는 ‘자아에서 주체로’ 시를 확장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 확장을 ‘새로운 서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전통적 서정이 ‘세계의 자아화’라는 아름다움의 영역에 머물렀다면, ‘새로운 서정’은 현실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진정한 진리는 착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진리는 언제나 위협적인 것이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185) 그것은 서정의 확장이며, 서정의 확장은 자아를 주체로 바꿔야 가능했다. 그런 확장을 통하여 한국 현대시는 ‘시=서정시’에서 ‘시>서정시’로 영역을 정비할 수 있었나 보다.
과연 ‘자아에서 주체로’ 시선이 바뀌면 느낌이 바뀔지 혹은 시가 바뀔지 살펴보자.
[한 방울] - 김선우
새벽에 일어나 오줌을 누다
한 방울
오줌 방울의 느낌
물은 빠져나가니까
몸에 갇히지 않으니까
어디서든 기어코 흐르니까
가두는 자가 아니라
흐르고 빠져나가는
저 역할이 마음에 든다…… 중얼거리며
물로 태어나리라
처음은 비
입술로 스며 그대 몸속
어루만져 속속들이 살린 후
마침내 그대를 빠져나가는
김선우 시인(1996년 등단)은 시와 소설에서 두루 활동하고 있다. 그의 근간 시집 『녹턴』은 시인이란 얼마나 지난한 직업일까 엿보게 하는 역작이다. 그 시집은 매우 서정적인 단면과 매우 관념적인 단면을 두루 보여준다. 열심히 감각하고 골고루 수학하는 두 방면의 노고가 간단치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위 시는 매우 서정적으로 읽힌다. 물이 되어 그대 몸속에 스몄다가 마침내 그대를 빠져나가리라는 감성은 지극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입술로 스며 그대 몸속 어루만져’ 라는 부분은 매우 감각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서 화자인 ‘나’를 형상하는 대상은 ‘물’인데, 처음은 새벽에 일어나 누는 ‘오줌’이다. 하필 오줌일까 싶지만, 오줌도 물이고, 흐르고 빠져나가는 제 역할에 잘 들어맞는다. 그 다음은 ‘비’로써 물이다. 비는 무분별하게 세상을 적신다. 그 ‘비’의 일부가 그대 입술에 스며든 후 그대를 빠져나간다고 할 때, 그 한줌 물의 흐름은 화자 ‘나’의 사랑의 관념을 그려낸다. 이때 ‘나’는 '물'로써 형상화된 대상이며, 바로 주체이다.
이 시에서 자아와 주체의 차이는 미세하다. 자아로 읽어 사랑의 서러운 감성(주관화)을 보는 것이나, 주체로 읽어 사랑의 근원적 한계(객관화)를 보는 것이나, 회자정리(會者定離)의 관념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자아’보다 ‘주체’의 시선이 훨씬 넓고 깊지 않을까.
주체는 대상의 관계망이다. 주체로 읽을 때 해석은 더욱 열려 있다.
(2016.7.16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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