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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이야기 2016

시는 이중화로 절묘해진다 – 박형권 [은행나무]와 공광규 [운장암]

창비시선 400 기념시선집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2016.7.27)

 

[은행나무]          - 박형권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

나는 밥할 줄 모르고,

낙엽 한줌 쥐여주면 햄버거 한 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낙엽 한잎 잘 말려서 그녀에게 보내면

없는 나에게 시집도 온다는데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

낙엽 쓸어담아 은행 가서 낙엽통장 만들어달라 해야겠다

내년에는 이자가 붙어 눈도 펑펑 내리겠지

그러니까 젠장,

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

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

밥 사 먹어라

 

시의 어조를 다섯 가지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유용한 방법 같다. 그 다섯 어조란풍자, 예찬, 연민, 반성, 해학을 말한다. (권혁웅, 『시론』, 5장에서) 인간의 정서를희로애락딱 넷으로 유형화하는 것이 위태로워 보여도 그걸 벗어나는 감정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 인간의 미묘한 감정이라고 해봐야 네 가지 감정의 조합, 즉 감정의 이중화 때문 아닌가? 유형화는 대개 유용하다. 유형화는 이론의 기초일 뿐 아니라 이해의 기반이기도 하다.

 

권혁웅은 『시론』에서 시의 다섯 가지 어조에역설과 반어를 이중화로 보강한다. ‘풍자, 예찬, 연민, 반성, 해학이 화자가 청자나 제재에 대해 취하는 다섯 가지 태도라면, ‘역설과 반어는 어조라기 보다는 논리의 기술에 가깝다. ‘5+2’의 미묘한 조합(그것들을 통틀어이중화라 해보자)이 현대시의 표정들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위 시는 그 가운데 연민과 해학 그리고 반어의 조합이다.

 

돈의 역사는 거의 인류 문명의 역사와 겹친다. 요즘 들어 유독 돈이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시의 화자(아마도 시인에 어울린다)는 돈이 궁색하다. 돈이 궁색하면 사람에도 궁색하다. 해서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는 말은 돈만 없는 게 아니라 사람조차 없는 외로움을 말해준다. 돈은 없고, 낙엽이나 주울 처지인 화자는 낙엽으로 햄버거도 밥도 사먹고, 심지어 여자도 얻고 싶다고 상상을, 아니 망상을 한다. 여기까지는 화자의 자기 연민이다. 시는 그 다음에 성립한다. 누군가 낙엽을 주위 핸드백에 넣는다. 화자는 그런네 손 참 곱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말한다. 주운 그 낙엽으로밥 사 먹어라!’ 이 말은 해학이며 반어이다. 낙엽으로 햄버거나 밥 사먹고 싶다는 망상에서 우러나는 우스꽝스러운 해학이며, 동시에 화자의 진심이 담긴 고운 손에 대한 예찬을 품는 반어이다. 어조가 이중화되는 순간, 시는 찬란해진다.

 

그러한 어조의 이중화를 아래 시도 보여준다.

 

[운장암]          - 공광규

 

풀 비린내 푸릇푸릇한 젊은 스님은

법당 문 열어놓고 어디 가셨나

 

불러도

불러도

기척이 없다

 

매애
매애

풀언덕에서 염소가

 

자기가 잡아먹었다며

똥구멍으로 염주알을 내놓고 있다

 

염소가 똥꾸멍으로 내놓는 염주알은 염소똥에 대한 그저 은유이다. 염소가 사람 잡아먹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시의 서두에풀 비린내 푸릇푸릇한 젊은 스님이 사라진 후 염소가 똥꾸멍으로 내놓는 염주알은 젊은 스님을 연상하게 하고, 염소를 의심하게 한다. 지극한 연민과 해학과 역설이다.

 

어조의 이중화는 절묘하다.

 

 (2016.9.2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