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시인선 090, 2017.4.18)
[소수 3] - 허은실
남자가 김치를 찢는다 가운데에다 젓가락을 푹 찔러넣는다 여자가 콩자반을 하나 집어먹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남자가 젓가락을 최대한 벌린다 다 찢어지지 않는다 여자가 콩자반을 두 개 집어먹는다 왼팔을 식탁 위에 얹고 고개를 꼬고 있다
남자가 줄기 쪽에 다시 젓가락을 찔러넣는다 젓가락을 콤파스처럼 벌린다 김치 양념이 여자의 밥그릇에 튄다 여자가 쳐다보지 않는다 콩자반을 세 개 집어먹는다 남자가 김치를 들어올린다 떨어지지 않은 쪽이 딸려 올라온다 여자가 콩자반을 네 개 집어먹지 않는다 딸려 올라가는 김치를 잡는다 남자와 여자가 밥 먹는 것을 중단하고 말없이 김치를 찢는다
김치를 전부 찢어놓은 여자가 밥을 먹는다 말없이 계속 먹는다 여자는 찢어놓은 김치를 먹지 않는다 깻잎 장아찌를 집는다 두 장이 한꺼번에 잡힌다 남자가 한 장을 뗀다 깻잎 자루에서 남자의 젓가락 끝과 여자의 젓가락 끝이 부딪친다 찢어주느라 찢어지지 못한 늦은 아침
늙은 냉장고가 으음 하고 돌아간다
한 부부가 있다.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말없이 밥을 먹고 있다. 남자는 김치를 찢어 먹는 습관이 있는지 젓가락으로 김치를 찢고 있다. 여자는 콩자반을 하나 둘 집어먹는다. 남자가 김치를 찢는 일은 여자의 젓가락 도움을 받아 끝난다. 여자가 깻잎 먹는 일 역시 남자의 젓가락 도움을 받는다. 한때는 손끝이 스쳐도 뜨거운 시절이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서로 반찬을 도움 줄 때나 젓가락 끝이 부딪친다. 부부가 밥을 먹을 때 말없는 풍경은 슬프다. 위 시는 부부가 늙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범상한 밥상 풍경, 시는 젓가락질만 내내 클로즈업하다가 ‘늙은 냉장고’로 시선을 돌린다. 냉장고가 늙은, 오래된 만큼 부부 또한 그러한 것을 짐작하게 한다.
허은실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에는 살며 사랑하는 이유 같은 것, 혹은 방식 같은 것, 아니 형식 같은 것이 있다.
타인을 견디는 일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목 없는 나날] 중에서)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더듬다] 중에서)
타인을 견디는 일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난해한지 말하기 어렵다.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는다고 외로움이 줄 것 같지 않다. 그렇더라도, 살며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나비 한 쌍
서로 희롱하며
춤추고 있다
(…)
곧 서리가 내릴 것이다
구애가 전 생애인
몸들 위로 ([상강] 중에서)
나비에게 구애가 전 생애인 것은 본능 때문이다. 타인을 견디는 일이나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 다 난해하다면, 사랑은 본능이 되어야 한다. 본능에 따라 욕망하고, 욕망에 따라 사랑해야 한다. 어쩌면 삶은 천형이고, 사랑은 삶이란 천형을 견디는 방식이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마] 중에서)
내 아내가 나를 가장 기쁘게 기억하는 순간이 이마에 손을 얹어준 때라고 한다. 출산 후 병원 침대에 실려 나올 때, 내가 아무 말없이 이마에 손을 얹어 주었다나. 그 순간 서늘한 손바닥은 제가 느낀 나의 최고 순간이었다고 한다. 손바닥은 때때로 이마에 닿고, 이마는 신열에서 잠시 벗어날 듯 손바닥을 느낀다. 어느덧 사랑은 삶을 견디는 형식이 된다.
시멘트 계단에
민달팽이 한 마리
저녁을 건너고 있다
체액이 희미한 물기를 남기고는
이내 사라진다
배를 깔고
몸을 밀어
가는 것들
온몸이 혀다
쓰리고 느리게 기어서 길을 햝는다 ([혀] 중에서)
누구나 삶은 견디는 무엇이다. 민달팽이가 저녁 시멘트 계단을 가로지르는 지난한 일처럼, 배를 깔고 몸을 밀어 쓰리고 느리게 길을 햝으며 가야하는 게 어쩌면 삶이다. 삶과 그 외로움을 견디기 위하여 서로 더듬는 게 사는 일이고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사는 일은 흔하다. 사랑이 삶의 이유이고, 삶을 견디는 방식이고, 다 늙었을 때 사랑이 형식이 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진부하다. 누구나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진부하기 마련이다. 늙은 부부가 말없이 밥을 먹고, 반찬을 도움 주고, 젓가락 끝이 살짝 부딪칠 때, 그런 사랑은 진부해서 슬프다.
길바닥에는
가을 사마귀
풀빛 갈색으로
그을렸다
가늘은 다리가
어디로 갈지를 몰라 하여
나는 잠깐 설웁다 ([상강] 중에서)
그래도, 어디로 갈지를 몰라 설운 사마귀보다 전 생애를 구애하는 나비가 나아 보인다. 제 짝을 잡아먹고 늦은 가을을 배회하는 사마귀보다 말없이 반찬을 도움 주는 늙은 부부가, 설움보다 슬픔이 견딜 만해 보인다.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 예술이라면, 진부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 시 혹은 사랑 같다.
(2017.8.31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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