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보고 싶은 오빠』 (창비, 2016.4.11)
김언희 (1989년 등단) 시인은 시력 25년이 넘는 중견이다. 이번 시집까지 5권의 시집을 대략 5년마다 엮어냈다는 시인은 그 도발적 언어와 그에 상응하는 변태적(?) 상상력으로 독자에게 시를 넘어서는 충격을 안긴다. ‘내가 진짜 되고 싶었던 것은 시인이 아니야 두개골 천공기야’ ([스카이댄서, 영등포] 중에서)라고 시인은 자복(自服)한다. 시를 통하여 독자의 두개골을 천공하겠다는 배포는, 치기가 아니라 그럴만한 내공이 충분하다는 데서, 오히려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이전의 여성시 대부분을 내숭으로 만들었고 이후의 여성시 상당수를 아류로 만들어버렸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606)라는 비평가의 찬사는 문학적 레토릭이 아니라 사실이 분명하다.
시인에게서 읽어야 하는 것은 내숭떨지 않는 언어가 주는 충격이 아니라, 그런 언어로 구성하는 상상력의 기괴함이 아니라, 그 언어가 증거하고 상상력이 재현하는 인간 존재의 민낯인 것 같다. 시인이 까발기는 인간의 민낯은 하찮은 동물의 그것이다. 그 동물성의 제일은 욕망이며, 바로 성적 욕망이다. 그것으로 인간이 살고, 시인도 그러한가 보다.
[회전축] - 김언희
23도26분21초4119
지구의 기울기는
발기한
음경의, 기울기
이 기울기를
회전축으로
지구는
자전한다
위 시는 시집 맨 앞에 놓인, 말하자면 서시(序詩)이다. 지구의 기울기를 음경의 기울기로 읽어내는 그 정도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시인은 그 음경의 기울기를 회전축으로 지구가 자전한다고 한 걸음 더 내딛는 경지를 보여준다. ‘부처란 마른 똥막대기다’라고 필부가 말하면 장난이 되겠지만, 선사가 말하면 화두가 되는 차이가 분명 있다. 필부에게 없는 것을 선사는 내공으로 쌓았을 터이다. 시인이 ‘발기한 기울기를 회전축으로 지구는 자전한다’고 말할 때, 시인은 인간계의 진면목을 본 것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속셈을 다 들킨 셈이다.
[보고 싶은 오빠] - 김언희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 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 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면서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주었어, 끊어질듯이 울어대는 아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 오빠, 찍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 찍소리 없이 섹스를 해, 찍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새끼들이 됐나봐, 껍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지려, 하느님도 지리실걸, 낭심을 꽉 움켜잡힌 사내처럼,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
김언희 시인의 시집 표제가 되는 시 [보고 싶은 오빠]는 통렬하다. 전통적 시를 벗어나는 작법 – 자아에서 주체로, 대상에서 상상으로 – 을 정확히 활용하고 있다. 화자(주체)는 제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그의 화제가 인간 일반의 욕망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 개가 신기해,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라는 독백은 거의 선사의 경지처럼 보인다. ‘부처란 마른 똥막대기다’라는 일갈(一喝)을 거기서 읽는다.
맨 끝에 걸리는 구절 -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는 위트다. 뭘, 어디에, 공짜로 넣어준다는 것인지, 아는 자는 이 시를 제대로 읽은 셈이다.
(2016.7.4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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