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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이야기 2017

똥 누는 자세, 시인들의 – 고진하의 [뒷간]과 황지우의 [심인]

시집 『명랑의 둘레』 (문학동네시인선 076, 2015.11.10)

 

    '시적인 것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것은 시인의 주관 내부에 어떤섬광처럼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주관주의), 객관적인 세계 어디에리얼하게존재하는 것도 아니다(객관주의). 시적인 것은 (…) ‘사이에 있다.

  -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534

 

[뒷간]          - 고진하

 

뒷간에 가는 일은 소중하다

간밤에 쌓인 술독을 빼기 위해 가기도 하지만

슬픔의 독을 덜어내기 위해 가기도 한다

슬픔의 독이든 술독이든

변기의 물과 함께

그냥 주르르 흘려보내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못대가리처럼 벽에 붙은

귀뚜라미가 그것들을 가져가 귀뚤귀뚤 울어대기도 한다

그러나 뒷간에 갈 때마다

뭘 빼거나 덜어내기 위해서만 가는 건 아니다

하늘로 향한 창밖 총총한 별들 바라보며

별들의 희열을 탁본하기도 하고

별들이 읊어주는 시를 베껴오기도 한다

뒷간에 가는 일이 소중한 건

적어도 거기서는 뭘 움켜쥐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빼고 덜어낸 뒤 시원스레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고진하의 [뒷간]시인의 주관 내부에 어떤 섬광처럼 존재하는 주관주의의 한 사례로 읽을 수 있다. 뒷간에서 하는 일이란 똥 누는 일이다. 시인은 그걸 간밤에 쌓인 술독을 빼는 일, 슬픔의 독을 빼는 일이라 한다. 창밖 총총한 별을 바라보는 일, 별들의 희열을 탁본하는 (그 반짝임을 마음에 담는) , 빼고 덜어낸 뒤 시원스레 흐르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라 한다. 똥 누는 일에서  섬광처럼 얻은 각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인은 똥 누는 자세로 관조(觀照)의 세계를 그려낸다.

 

[심인]          - 황지우

 

김종수 80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31세 아버지가

기다리시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심인(尋人)이란 요즘은 거의 없지만, 신문지면에 사람 찾는 작은 광고란이다. 그걸 차용한 황지우 시 [심인]은 그의 유명한 에피그램, “나는 말할 수 없음으로 양식을 파괴한다. 아니 파괴를 양식화한다” (같은 책, 550)라는 시론을 적용한 매우 효과적인 시다. 화자는 화장실 - 쭈그리고 앉은 걸로 보아, 좌변기 없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똥을 누고 있다. 변비가 있는지, 신문의 심인란까지 읽고 있을 만큼 거기 오래 머무른 것 같다. 화자의 눈에 보이는 심인란 그대로 사람을 찾는 짤막한 토막 문장들이 읽힌다. ‘김종수 80 5월 가출 소식 두절 11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이 시는 보기 보다 많은신호를 보내고 있다.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는, 심인란까지 뒤척이는 한가한 일상이 있다. 여럿이 가출한 것처럼 보이고, 사연들은 허술하다. 그중 하나 심인란에는 그 이름과 가출한 때와 연락처가 찍혀 있다. 그것이 80 5월이다. 80 5 - 문득 광주 사건이 그때인 것을 알아차리면, 독자는 섬뜩하게 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진하의 [뒷간]은 시인이 얻은 해석을 시적으로 보여준다. 이때시적이란 시인의 주관이며, 그것은 리듬 있는 문장과별들의 희열을 탁본한다는 등의 수사에 힘입어시적이게 된다. 황지우의 [심인]은 신문 쪼가리 문장들과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는 서술이 전부이다. 그걸 시로 완성하는 힘은, 그걸 시로 읽어낼 수 있는 독자의 눈썰미가 보태져야 한다. 심인란 가운데 하나는 가출이 아니라 광주의 그때 폭력으로 인한 실종이다. 느슨한 일상과 국가적 폭력의 은밀한 대비를 읽어낼 때, 독자는 문득 시를 느끼게 된다. 그것이 황지우가 희망하는사이에 있는시적인 것이지 싶다.

 

시를 주관으로 삼든 객관으로 삼든 나와 너 사이의 징후로 읽든, 시는 똥 누는 자세조차 아름다울 수 있다. 해도, 주관이나 객관의 두 갈래 말고, '시적인 것'을 따로 찾는 황지우의 똥 누는 자세가 더욱 눈길을 끈다. 그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2017.7.4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