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명랑의 둘레』 (문학동네시인선 076, 2015.11.10)
고진하(1953-) 시인은 강원도 어디 사는가 보다. 목사이자 시인. 시인은 목자(牧者)로서 연민하며 세상을 보듬으려는 것 같다. 그의 시집에서, 시절은 이른봄이기 일쑤이고, 너무 간섭한다 싶게 화자가 개입하거나, 언어는 낮은 단계 은유를 거의 넘지 않는다. 시인은 시라는 언어가 세상을 찬란하게 하는 게 아니라, 시라는 생각이 세상을 보살핀다고 믿는 듯하다.
독자의 입장에서, 긴장 없는 언어는 시를 읽는 흥미를 반감(半減)하기 마련이다. 그런 반감(反感)에 개의치 않고 시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시인은 시인이기 이전에 목자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시를 높이 두기보다 더 높이 두어야 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하기는 독자보다야 99마리 양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99마리 순한 양보다 1마리 길 잃은 양이 더 귀하다는 예수님 말씀도 있다. 그 1마리 양이 독자라면 어찌해야 하나? 성경에서 로고스(말씀, 진리)를 읽는다면, 시에서는 좀 다른 것을 다르게 읽고도 싶다.
[고로쇠나무 우물] - 고진하
그 오지에는 지금 갈 수 없으므로
그 오지의 빙설에 갇혀 있을 고라니 애인을 생각한다
이른봄의 궁기 털어낼 듯
아지랑이 피어올라 산허리를 친친 애무하고
혹한을 견딘 나목(裸木)의 팔뚝마다
연둣빛 꽃눈 톡톡 튀어올라
봄의 빗장 여는 소리로
곰배령 계곡은 잔뜩 들떠 있겠지만
아직 꽝꽝 얼어붙은 계류가 녹지 않아
물 한 모금 쉽게 마실 수 없을
고라니 애인의 목마름을 생각한다
길 없는 산길
더듬더듬 더듬어 올라가면
우람한 고로쇠나무 우물이 있어,
그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겨우 해갈의 기쁨을 누리고
그 우물에 상표를 붙이는 이들을 연민할
산토끼의 충혈된 눈도 생각한다
험준한 산등성이 헐떡거리며 넘던
구름 탁발승이 내려와
초췌한 얼굴 비쳐보고
기러기 순례도 깊이 빨대를 꽂고
그믐달 술래도 몰래 발을 적시고 갈
고로쇠나무 우물의
샛노란 빈혈에 대해 생각한다
늦게 해가 떠오르고 일찍 해가 떨어지는
곰배령 계곡
그 오지에는 지금 갈 수 없으므로
그 오지에서 사랑의 빈혈을 앓고 있을
멀대처럼 키만 큰 고로쇠나무 우물을 생각한다
고로쇠 물은 이른봄에 귀하다. ‘고로쇠물’이라는 상품이 팔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고로쇠 물을 건강을 위해 마시지만, 자연은 그것을 생명의 물로 마신다. ‘아직 꽝꽝 얼어붙은 계류가 녹지 않아 물 한 모금 쉽게 마실 수 없을 고라니’가 간신히 마시는 고로쇠 물이다. 마치 우화처럼, 고로쇠나무 우물이 있고, 두레박을 내려 그 물을 마신다고 하였지만, 고로쇠나무는 우물이 아니고, 고라니는 두레박을 도구로 쓰지 않을 터이다. 고라니는 이빨로 나무 줄기를 상처 내고, 고로쇠나무는 상처에서 물을 내놓을 것이다. 그것은 기독(基督)에 흡사하다.
위 시는 낮은 단계의 은유와 높은 단계의 은유를 다 포함한다. 낮은 단계의 은유란 단어간 은유를, 높은 단계의 은유란 시 전체가 품는 개념적 은유를 말한다. 고라니 애인, 고로쇠나무 우물, 구름 탁발승, 기러기 순례, 그믐달 술래 등등은 시인이 잘 활용하는 낮은 단계의 은유이다. ‘고라니(라는) 애인’ 혹은 ‘고로쇠나무(라는) 우물’에서 조사를 탈락하여 아예 두 명사를 병치하는 형식은 낯선 감이 없지 않다. 두 단어는 의미에서 바짝 붙어 은유의 함의를 제한한다. 단어간 은유는 대개 낮은 단계의 은유이다. 고로쇠나무가 ‘오지에서 사랑의 빈혈을 앓고’ 있다는 것은 시가 품는 개념적 은유이다. 사랑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지, 사랑을 나눠주던 기독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것처럼, 고로쇠나무는 빈혈을 앓는다.
시인은 ‘오지의 빙설에 갇혀 있을 고라니 애인’을 생각한다. 곤란한 세상에는 목마른 애인뿐 아니라 길 잃은 양도 있다. 1마리 양은 ‘고로쇠나무 우물’에서 목을 축이지 않을지 모른다. 1마리 양은 고로쇠나무가 기독이 되는 것을 다만 기도할지 모른다.
(2017.7.1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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