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민음의시 219, 2015.12.21
비 맞는 운동장 - 황유원
비 맞는 운동장을 본 적이 있는가
단 한 방울의 비도 피할 수 없이
그 넓은 운동장에서 빗줄기 하나 피할 데 없이
누구도 달리지 않아 혼자 비 맞고 있다
어쩌면 운동장은 자발적으로 비 맞고 있다
아주 비에 환장을 한 것처럼
혼자서만 비를 다 맞으려는 저 사지(四肢)의 펼쳐짐
머리끝까지 난 화를 식히기 위해서라면
운동장 전체에 내리는 비로도 부족하다는 듯이
벌서는 사람이 되어 비를 맞고
벤치에 앉은 사람이 되어 비를 맞고
아예 하늘 보고 드러누운 사람이 되어 비를 맞다가
바닥을 향해 엎드려뻗쳐 한 사람이 되어 비를 맞아 버린다
혼자 비를 맞고 있는 운동장, 누가 그쪽으로
우산을 든 채 걸어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검은 우산을 들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무슨 작은
구멍 같아 보이는 사람이 벌써 몇 바퀴째
혼자서 운동장을 돌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도 비를 맞으며 뛰놀진 않는 운동장
웅덩이 위로 빗방울만 뛰노는 운동장에서
어쩌면 운동장 구석구석에 우산을 씌워 주기 위해
어쩌면 그건 그냥 운동장의 가슴에 난 구멍이
빗물에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는 건지도 몰랐지만
공중을 달려온 비들이
골인 지점을 통과한 주자들처럼 모두
함께 운동장 위로 엎질러지는 동안
고여서 잠시, 한 뭉터기로 휴식하는 동안
우산은 분명
운동하고 있었다
혼자서 공 차고 노는 사람이
혼자서 차고
혼자서 받으러 가듯
비바람에 고개 숙이며 간신히 거꾸로
뒤집어지지 않는 운동이었다
상하 전후 좌우로 쏟아지는 여름의 십자포화(十字砲火)를 견디며
마치 자기가 배수구라도 되겠다는 양
그 구멍 속으로 이 시의 제목까지 다 빨려 들어가 버려
종이 위엔 작은 구멍 하나만이 남아 있을 때까지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자신을 소멸시키겠다는 듯이
가까스로 만들어 낸 비좁은 내부 속으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소릴
집중시키고 있다
1.
황유원의 시가 아름다운 특징을 위 인용시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특징은 한 마디로 오래된 서정이다. ‘오래된 서정’이란 사물을 빌어 제 심정을 말하는 시의 기술을 말하는데, 황유원의 시는 딱 그런 형상이다. ‘오래된’ 무엇이라는 것은 호불호가 함께 한다. 좋게 보면 아름답고, 나쁘게 보면 낡았다. 좋게 보면 그것은 소통하는 시고, 나쁘게 보면 그것은 현대성에 결격이다. 예술의 현대성은 언제나 새로울 것을 요구한다.
위 시의 대상은 두 개다. 하나는 비 맞는 운동장이고, 다른 하나는 검은 우산이다. 사지를 펼쳐 하늘 보고 드러누운 듯이 비를 맞는 운동장은 누군가를 의인(擬人)한다. 운동장은 비를 맞으며 어떤 곤란에 온몸을 드러낸다. 운동장은 말하자면 세파에 시달리는 남자다. 그렇게 비가 퍼붓는 운동장을 도는 검은 우산이 있다. 운동장 구석구석 우산을 씌워 주려는 듯이, 검은 우산은 상하 전후 좌우 쏟아지는 여름비의 십자포화를 견디고 있다. 마치 자기가 배수구라도 되겠다는 양, 검은 우산은 운동장과 함께하는 동반이며, 희생이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소릴 집중시키고 있다’는 결구는 검은 우산을 지극한 사랑이라 읽게 한다.
운동장과 검은 우산은 견디는 자와 위로하는 자의 환유이며, 삶과 사랑의 은유이다. 이러한 수사학은 또한 황유원 시가 ‘오래된 서정’인 것의 증거이다.
2.
신형철의 신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다가 이를 테면 ‘새로운 서정’을 봤다. 신형철은 이 시대 최고의 비평가라고 할 만하다. 그는, 그가 모토로 삼은 ‘정확하게 칭찬하는 비평’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자가 아름답게 읽을 수 있게 비평을 하는 몇 안 되는 비평가이다. 그가 “거의 두 시간 동안을 한 편의 시만 읽고 또 읽게” 되었다는 시를 황유원의 인용시와 비교해보면 ‘새로운 서정’과 ‘오래된 서정’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시를 신형철은 가난한 사내가 가난 때문에 여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슬픈 이야기라고 읽는다. 두 시의 차이는 크게 보면 수사학의 함량에 있고, 또 문장의 간격에 있다. 황유원의 시가 수사학을 최대로 활용한다면, 신형철이 감상(感傷)하는 시는 수사학이랄 게 거의 없다. (수사가 없는 시 혹은 문장은 불가능하다. 언어 자체가 수사이기도 하고, 시의 언어는 수사의 중력을 벗을 수 없다. 차이가 있다면 함량이다.) 황유원의 문장은, 인용시에서 연(聯)구분도 없는 밭은 간격처럼, 행과 행 간에 아무런 비약이 없다. 그 문장은 상황을 수사하고, 독자는 그의 수사를 해석하며 따라가기 쉽다. 신형철이 감상하는 시는 연과 연이 나뉘고, 그 간격보다 문장과 문장의 거리는 더욱 멀다. 독자는 그런 간격을 상상으로 채워야 한다. 신형철은 그 문장들에 쓰이지 않은 사건과 의미를 감상하느라 거의 두 시간을 읽고 또 읽었을 것 같다.
황유원의 시와 신형철의 그 시는 서정의 다른 얼굴을 비교하는데 적합할 듯하다. 오래된 서정과 새로운 서정은 시인의 지향이고, 독자의 선호일 수 있다. 오래된 서정은 해석케 하고, 새로운 서정은 상상케 한다. 차이는 크다. 예술은 언제나 새로움을 찾고, 비평은 그런 예술에 혈안이기 마련이다. 새로운 서정은 대게 대세가 된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2019.2.9 진후영)
'시시한 이야기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적 진술과 시적 자유 – 허수경, 푸른 들판에 살고 있는 푸른 작은 벌레 (1) | 2019.05.20 |
---|---|
천천히 읽히는 슬픔 – 유희경, 너의 사물 (1) | 2019.04.20 |
자연에 귀의하는 오류 – 장석남, 녹슨 솥 곁에서 (0) | 2019.03.29 |
돈오? 그러나 답은 더디고 – 장석남, 소풍 (1) | 2019.03.05 |
시인이 쓴 시 – 황유원, 항구의 겨울 (0) | 2019.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