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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

왼쪽과 서쪽에 관한 무의식 - 손톱달

손톱달          - 진후영

 

그날 요양병원 옥상 멀리 달이 기울었다

 

고관절 수술을 한 노인은 왼쪽을 전다

보행기를 붙잡고

왼쪽으로 돌면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돌면 바깥으로

빨라지는 구심력보다 느려지는 원심력이 안전할까

아들은 오른쪽 산책을 동행한다

노인은 커지는 원둘레를 버거워한다

자꾸만 옥상 난간에 보행기 왼쪽 바퀴가 걸린다

왼쪽을 절면서 오른쪽을 돌면서

왼쪽을 절면서 오른쪽을 향하면서

노인은 아들이 가리키는 쪽으로 걷지만

왼쪽은 가까워지고 오른쪽은 멀어지고 있다

 

그날 요양병원 옥상 멀리 달이 기울었다

눈썹달이 떴네요

손톱달이란다

눈썹을 보는 시선과 손톱을 보는 시선이 엇나간다

높게 보는 것과 낮게 보는 것,

가려는 방향과 가는 방향,

멀리

달이 더욱 기울었다

 

[시작 노트]

  오른쪽과 왼쪽에는 방향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들어 있다. 밥상머리에서 오른손 사용자와 왼손 사용자가 붙어 식사할 때 동선이 충돌하여 불편한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오른쪽은 옳은 쪽이며, 왼쪽은 그른 쪽이다,라고 강요하는 것은 개인적 특성을 억눌러서 집단의 편의를 도모하는 질서 지향의 사회적 강제라고 할 수 있다.

 

  방위에서 서쪽과 북쪽도 그러하다. 동쪽과 남쪽은 해가 뜨고 밝은 낮의 세계이며, 서쪽과 북쪽은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의 세계이다. 동쪽과 남쪽에는 삶의 우세가, 서쪽과 북쪽에는 죽음의 우세가 있다.

 

  그래서 왼쪽보다 오른쪽에 자리하려 하고, 서쪽보다 동쪽을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왼쪽과 서쪽을 어둠과 죽음의 미지라고 언제까지 멀리 할 수 있을까? 왼쪽과 서쪽은 가지 않으려고 해도 가고 있는 방향이다. 이상하게도, 싫어도, 우리가 가는 방향은 왼쪽이고 서쪽이다.

 

  짐작하겠지만, 여기서 노인은 내 어무이다. 시를 쓰는 동안 그러려니 왼쪽이라고 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수년 전 내 어무이가 받은 고관절 수술은 오른쪽이다. 이것도 왼쪽이었어야 한다는 내 사회적 무의식 아닐까 싶다.

 

(202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