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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

균형 속 불균형 –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 진후영

 

앞에서 오는 사람이 나를 보고 우산을 접는다

나는 우산을 쓴 그를 보고 우산을 편다

세상은 균형을 회복한다

하나 둘 셋

1/2 1/4 1/6

거리는 걸음마다 반감한다

하나 둘 셋

2 4 6

거리는 걸음마다 체증한다

세상은 어차피 균형을 회복한다

 

아이 둘이 나란히 노래를 부르며 걸어온다

차 소리가 아이들 우산 아래 섞인다

세상은 균형을 회복한다

노래는 들리지 않고

빗방울

보도에 튀긴다

담배연기는 퍼지지 않고

뭉게뭉게

허공에 뭉친다

세상은 어차피 균형을 회복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비 오는 날

세상은 한쪽으로 무거워진다

 

 

[시작노트]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것은 이상하게 다르다. 사랑하면 사랑받아야 할 것 같은데, 암만 사랑해도 사랑받아지지 않는다. 사는 데 지혜가 모자라듯이 사랑하는 데 지혜가 모자란 것도 같다. 그렇다면, 아무도 지혜롭지 않는 것처럼, 누구도 사랑받을 수 없는가? 사람 일은 참 이상하다.

 

  질량불변.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 내가 우산을 펴지 않은 것을 보고 마주 오는 사람이 우산을 접는다. 나는 그가 우산을 펴고 오는 것을 보고 우산을 편다. 우산이 동시에 한 개 펴지고 한 개 접혔다. 세상은 균형을 잃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소일노. 우산 두 개가 나란히 걸어온다. 아이 둘이서 나지막이 노래를 부른다. 어떤 노래인지 소음에 묻히지만, 아이 둘이 즐거운 것이 밝은 표정에 가득하다. 나의 우울은 그들 즐거움으로 지워진다. 세상은 균형을 잃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하다. 세상은 한순간도 균형을 잃지 않는데, 나는 왜 부침하는가?

 

(2023.7.15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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