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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

Peace Hall - 이 땅에 평화

 

Peace Hall  - 이 땅에 평화

 

눈사람이 홀로 서 있다

얼굴 없이

두 팔 저으며

여기, 여기, 소리치 듯이

들릴지

너무 먼 곳으로

소식을 전하여서

보일지

표정 없이

눈사람이 홀로 서 있다

흔들리며 눈이 내리는데

희미한 시야 너머

있었으면

굴릴수록 커지는 것은

눈덩이만이 아니라서

용서하라

후회는

지구만큼 부풀고

눈사람이 홀로 서 있다

 

[시작노트]

오랜만에 두 친구를 만났다. 커플 모임인데, 2.5 커플이다. 한 친구가 커플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란 오랜만에 만나도 옛날 같아서 친구이다. 세월을 지켜 온 것인지, 세월이 지켜 준 것인지, 친구란 안 보아도 친구인 셈이다.

 

안 볼 때 영영 남남인 것이 커플이다. 시시비비야 다 지난 일이다. 거기 후회가 없을까, 혹시 그리움이 없을까, 괜한 생각을 해보았다.

(Peace Hall은 그 친구가 근래 지은 집의 당호(?)라고 한다. 평화도 여러가지다. 그 하나가 마음의 평화다. 새집 짓고 그런 평화를 얻을 수만 있다면 억만금이 아까울 리 없다. 억만금이 없어서 나는 집을 못 짓고, 마음의 평화를 꿈꾸지 못한다. 새집에서 그 평화 꼭 얻으라.)

 

잘 사시라, 혼자라서 평화롭게 잘 살고, 둘이라서 기쁘게 잘 살자.

 

십 년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았더니 여기저기 눈사람들이 서 있다. 아이들이 만든 것들이겠다. 어떤 눈사람은 웃고 있고, 어떤 눈사람은 손을 흔들고 있다. 그 중에서 얼굴 없는 눈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만든 아이는 가고 없다. 시중든 아이 아빠만 뒷정리를 하고 있다. 아이는 얼굴 그릴 재료를 찾으러 갔을까? 그 얼굴에 담을 표정이 궁금하다. 그 얼굴의 표정에 담을 마음이 더욱 궁금하다.

 

(2023.12.25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