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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

알 수 없는 것들 – 생화, 또는 생활

 

생화, 또는 생활          - 진후영

 

가는 길이 좀 멀었습니다 날은 풀렸습니다 오전 산중턱 공기가 차가울까 내복까지 껴입었는데 차안 공기가 갑갑합니다 옆에서 아우는 아무 말로 서먹함을 지우려고 떠들지만 무엇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햇볕, 눈부신 햇살에 선글라스도 무용합니다 사고를 피할 수 있을까 잠시 걱정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무사할 것입니다

 

어제 친구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새로 집 지은 다른 친구 소식을 전합니다 소식 끊은 지 한참 되었습니다 친구란 게 가깝고도 멀어서 집 짓는 수고에 아무것도 보탤 말조차 생각나지 않습니다 귀촌하여 혼자 살 곳 번듯하면 좋을까, 새집 짓고 기대하는 일이 있을까, 알지 못합니다 이제 은퇴한 지인들과 이웃들, 귀촌한 이력이나 취미를 나눌 장소가 되기는 할 것입니다 바람처럼 소란하게 왔다가 쓸쓸하게 물러나지나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무사할 것입니다

 

무덤 표지석에 생화는 말라 있습니다 죽은 무덤 옆에서 산 것이 살 수 있는 날이 열흘은 될까, 생화를 새로 꽂습니다 무덤을 멀리 두고 마음은 더 멀리 두어야 합니다 오는 길에 산 4천원짜리 생화가 열흘이면 아깝지 않습니다 생활은 시들지 않게 집에 꽂아 두었습니다 재배(再拜), 앞에 것은 인사이고 뒤에 것도 인사입니다

 

우리는 무사할 것입니다

 

[시작노트]

  ‘죽은 정승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서 정승이면 좋았겠지만, 죽은 다음에 정승이었던 게 허망한 영광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고 했을까? 그렇더라도 죽음을 개에 비교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 싶다. 죽음은 산 자가 모르는 영역이다. 따라서 말할 수 없다.

 

  묘지에 조화를 꽂는 풍습에 말이 있다. 얼핏 보기에 죽은 무덤을 쓸쓸하지 않게 보일 수 있고, 몇 달은 빛바래지도 않고, 값은 저렴한 그 방법이 묘책 같았다. 조화가 전부 플라스틱이고, 대부분 중국산이고, 태우는 것 이외 처리 방법도 없어서 공원묘지 같은 곳에서 조화를 금지하는 추세다. 나의 어머니를 모신 공원묘지가 그런 조화 금지 규칙을 걸었다. 해서 모신 이후 생화를 사다 꽂고 있다. 몇 달 뒤 다시 가보면 생화는 여지없이 말라 쓸쓸하다.

 

  죽은 무덤 옆에 생화가 열흘 꽃핀다. 생활은 무엇 옆에서 꽃피는가, 생각해보면, 쉽게 말하기 어렵다. 오래 살아도 알 수 없는 게 삶이다. 죽음은 말할 수 없다. 그저 옆에 있는 걸 안다.

 

  그러나, 우리는 무사할 것을 믿는다. 믿고 싶다.

 

(2023.11.15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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