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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이야기 2024

결혼, 그 거창한 형식을 앞두고 – 이명윤, 신부의 아버지

 
시집,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 시인선 113, 2024.4.16
 
  “꽃피어 새 세상이 올 때 그 새 세상이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오는 것은 우리가 지녔던 관념 속에 어떤 결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    황현산, 『현대시 산고』, P241
 
신부의 아버지          - 이명윤
 
  신부의 아버지가 직접 쓴 시를 낭독하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 사이로 봄날의 꽃가지가 흔들리고 있었고 웅성거리는 하객들의 표정이 하얗게 조명에 비치고 있었다. 그의 언어는 쉽게 의도를 드러내었고 행간의 긴장은 느슨하였으며 잦은 감탄사의 등장은 십수 년간 익혀 온 시의 불문율을 흔드는 것이었다. 또한 그의 감정은 안에서 머물기보다 밖으로 나아갔고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비유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나는 낭독이 끝날 때까지 조금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행간마다 딸과 사위가 앉아 있고 휘둥그레 눈을 뜬 하객이 있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아내가 있었다. 그가 얼마나 그의 딸을 사랑하는지 그가 자주 걷던 동피랑 언덕을 따라 당도한 이 아름다운 봄날, 이 아름다운 꽃, 이 아름다운 시간, 한 구절 한 구절을 뚝뚝 색종이처럼 곱게 잘라서 그녀의 눈에 넣어 주고 그녀의 귀에 들려주고 그녀의 붉은 두 뺨에 뜨거운 갈채를 보낼 때, 나는 얼른 집에 가 아무도 읽지 않는 시집을 찾아 따뜻한 봄볕에 내어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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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재혼을 한다고 했을 때, 내가 물어본 첫마디는 상대 역시 재혼인지였다. 결혼이란 둘만 좋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둘만 보고 살겠다고 할 수 없는 거사(巨事)가 아니던가. 젊은 결혼이든 늙은 결혼이든 근본에서 다르지 않을 터이다. 결혼은 부부가 되는 일일 뿐 아니라 가족을 구성하는 일이다. 어떤 가족으로 시작하느냐, 그게 늙은 결혼을 하는 친구에게 걱정되었다. 복 많은(?) 친구는 초혼인 신부를 모시게 되었고, 보다 쉬운 앞날을 예감할 수 있어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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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에서 신부 아버지는 대개 쓸쓸한 조연이다. 신부 입장 때, 신부인 딸은 웃을 수 있어도 그 아버지는 표정이 굳기 십상이다. 시대가 암만 진보해도 결혼으로 딸을 남의 식구로 보낸다는 허전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아버지가 딸을 신랑에게 인계하는 예식 절차는 서구적인 풍습이지만, ‘시집간다’라는 우리 관념 또한 아직 살아있다. 아들은 '장가간다'고 말하여 비로소 어른으로 독립시킨다. 남편 집안으로 시집가는 딸은 예속이 바뀔 뿐이라는 의식 구조가 그 말 속에 있다. 결혼식에서 아버지는 딸을 내놓고 역할조차 조연이다. 쓸쓸한 게 당연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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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윤(1968-) 시인의 인용시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다.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시인은 시집가는 신부의 아버지를 축하하지 않는다. 그가 떨리는 마음인 것을 감지하고, ‘십수 년간 익혀온 시’력 (詩歷) 에도 느슨하고 감정적이고 평범한 시를 적어 읽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툰 문장에서 떨림을 사랑을 아름다움을 ‘한 구절 한 구절’ 놓치지 않는다. 그 신부의 아버지는 ‘아무도 읽지 않는 시집’을 내놓은 무명 시인인 것 같다. 시인은 그 ‘시집을 찾아 따뜻한 봄볕에 내어놓고 싶었다’는 말로 아버지 시인을 지극히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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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이야 거창한 형식이다. 아무튼, 신랑도 친구도 신부도 어느 아버지도 내내 행복하시라.
 
(2024.10.11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