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창비, 2014.3.20)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오롯이 아름다울 수 만은 없다. 그 대상이 설혹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모든 기억이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치가 그러하듯 어머니는 늙고, 본성이 그러하듯 어머니는 자식을 편애한다.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은 기억의 아름다움을 고르는 일이거나, 나만을 위하던 시선을 향수하는 일이다. 어머니와 자식 간이란 이타(利他)적 이기(利己)의 모순이다.
그래서 늙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연민이 더 낫다. 설혹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늙음이 아름답기는 어렵다. 어머니에게 남은 것이 자식들을 바라보는 시선일 뿐일 때, 그 늙음은 이제 보살핌이 필요한 시절이 된다. 그럴 때 어머니는 연민이다. 늙은 어머니는 그리운 당신이 아니라 보듬어야 할 연민이다. 애처로움이다.
시인은 어머니를 그리움으로 회상한다. 어쩌면 그것은 행운이다. 어머니를 연민하기 전에 보내드렸거나, 아름다움으로만 기억되는 어머니를 가졌거나, 어떤 경우인지 알 수 없지만, 시인에게 어머니는 한없는 그리움이다.
[고향 – 고사목] - 황학주
송아지를 팔고 가는 눈길이 있었다
눈 녹은 물 속에
작은 식물 같은 그늘이 있고
울먹임이 길에 고여 흘러내렸다
당쟁이덩쿨에 기댄 담벼락이 있었다
멀리 노을 사이로
한 눈송이가 한 눈송이를 안고 있다가
담벼락에 와 부딪쳤다
그냥, 넘어진 자가 있었다
멍이 든 채 담벼락 밑에
눈 녹은 물이 고였고
오래된 그늘이 제 속을 비추었다
슬레이트 지붕 밑엔
세숫대야에 더운물을 타 발을 씻기는
낡고 늙은 당신이 있었다
울먹임이 나이테처럼 간간이 넘쳤다
방문할 고향이 있는 것도 행운이다. 고향이라고 하면 아득한 시골 풍경이 먼저 온다. 송아지 팔고 가던 눈길이 있고,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처럼 높은 고목이 자리한 고향이 있다는 것은, 비록 한 시절을 서럽게 살아냈더라도, 이제 아프도록 충만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시인이 그러하다. 고향을 어찌 방문하는 길에 보이는, 눈 녹은 물 속에 드리우는 작은 그늘까지, 담쟁이 덩굴에 기댄 듯 허름한 담벼락까지, 눈발이 성성하여 담벼락을 때리는 풍경까지, 어느 것 하나 세세한 시선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거기 엎어져 마냥 추억 속으로 들어가 앉고 싶다. 그리고 세숫대야에 더운물을 타 발을 씻겨주시던 당신이 보인다. 낡고 늙은 당신이 있던 그곳에서 시인은 엎어져 운다. 그 울먹임이 나이테처럼 물결 져 간간이 넘친다.
어머니를 그리워할 수 있는 시인은, 그 시는 아름답고 부럽다. 나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어머니는 이제 그리움이 아니라 연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2015.12.24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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