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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이야기 2016

만두는 인생이고 너머이다 – 허연 [만두 쟁반]

시집 [오십 미터] (문지사, 2016.3.4)


[만두 쟁반]          - 허연

  이상하게 난 만두 앞에서 약하다. 일찍 떠나보낸 어머니도, 위태로웠지만 따뜻했던 어린 시절도, 제 살길 찾아 흩어지기 전 형제들의 모습도, 줄지어 쟁반 위에 놓여 있던 만두로 남아 있다.

  어쩌면 인생은 만두다. 파릇한 청춘과 짜내도 계속 나오는 땀이나 눈물, 지친 살과 뼈, 거기에 기억까지 넣고 버무리는 만두는 인생을 닮았다.

  하얀 만두피 속에 태생이 다른 것들을 슬쩍 감춰 놓은 것도 생을 닮았다. 잘게 부수어지고 갈리고 결국 뜨거워져야 서로를 이해하는 만두는 생이다.

  뒤엉켜 뜨거워지기 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뜨거워진 순간 출신을 묻지 않고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만두는 인생을 닮았다.

  허연의 근간 시집을 읽다 보면, 시인이 매우 개인적인 정서를 쥐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는 허무, 고독, 그리움, 죽음, 상실과 같은 키워드가 떠오르는 개인적인 감상들로 가득하다. 그것들은 허연이 사는 세계의 것들이고, 그의 시적 스케일일 것이다. 허연의 시가 담아내는 감상들은 하등 새로울 것 없는 흔한 정서이다. 그런 가운데 허연의 시가 아름다운 비결은 따로 있다. 그가 시적 대상을 그저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을 통하여 상상하고 해석해내는 의외로움, 바로 그것이다.

  위 시 [만두 쟁반]은 그러한 허연의 시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시의 대상은 ‘만두’이다. 쟁반 위에 줄지어 놓여 있는 만두를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흩어진 형제를 연상하는 것은 상상의 시작이다. 만두 속이 “짜내도 계속 나오는 땀이나 눈물, 지친 살과 뼈, 거기에 기억까지 넣고” 버무려진 것이란 상상의 중턱이다. 결국 뜨거워져야 서로를 이해하는, 뜨거워져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만두를 읽으면 – 아니, 따라 먹다 보면, 상상은 절정에 달한다.

  만두가 인생이라는 은유는 평이한 연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쟁반에 줄지어 놓인 만두에서 오랜 식구들 모습을 떠올리고, 그 만두 속에 버무려진 기억이나, 뜨거워진 다음에야 목을 타고 넘어간다는 시구를 따라가다 보면, 만두는 단순한 은유를 넘어선다.

  허연 시의, 혹은 시 일반의 아름다움은 그쯤에서 나온다. 대상을 두고 상상하고 해석해내는, 그 상상과 해석이 평범(대상)에 닿은 듯 넘은 듯 하는 그 지점에서 시는 아름다워진다. 만두는 인생이었다가 인생 너머 뜨거움이라는 그 무엇이 내 목에도 걸린다.


(2016.5.17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