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도 -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우리는 시를 사랑해]라는 메일 서비스가 있다.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주간 메일로 보내주는 것인데, 시인이나 소설가, 책방 마케터, 드라마 작가, 만화가 등등 온갖 책 관련된 이들이 한 주에 두 편씩 시를 골라서 제 취향을 간단하게 소감하는 내용이다. 나는 그 메일을 사람들이 어떤 시를 읽고 있는지, 호감하는지 엿볼 수 있어서 기꺼이 받아 읽고 있다. 인용한 시는 이번 주 [우ㆍ시ㆍ사] 메일에서 받은 시 중 하나이다.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7.17)은 2014년에 친구가 선물로 준 시집으로 기억한다.
잘 쓴 시와 좋은 시가 다르듯이, 좋은 시와 새로운 시는 또 다르다. 인용시는 시적 발상이 탄탄하다. 경건한 기도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며 하기 마련이다. 시는 그렇게 기도하는 자세로 기도하는 자세를 말하며 시작한다. 행을 내려가는 동안, 기도는 일상의 소소한 자세로 확장되고, 삶의 근원과 죽음까지 인생을 반추하는 자세를 포괄한다. 기도를 소소한 자세에서 삶의 모든 자세로 확장하므로 하여, 시는 삶이 전부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런 점층과 확장의 기교를 통과하며 [오래된 기도]는 잘 쓴 시에 도달한다. 시는 일상을 의미화하고, 그 의미의 반전(反轉)을 기도(企圖)하며 좋은 시로 향한다. 좋은 시를 염두에 둘 때, 시는 낡은 유산이 되기 쉽다. 대상과 감각과 인식 – 좋은 시는 인식의 영역이며, 인식은 언제나 상식에 기반한다. 제 아무리 의미의 반전을 기획하더라도 여전히 상식의 자장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부처님 손바닥에 오줌 누는 손오공 - 그게 좋은 시의 운명 아닐까 싶다. 좋은 시가 새로운 시에 닿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이렇게 낡은(?) 시를 근래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에게 찾기는 쉽지 않다. 이문재 시만 같으면, 시를 읽는데 곤혹이 없을 것 같고, 시를 읽는데 책 읽는 취미 이상이 필요 없을 것도 같다. 사는 게 모조리 기도발(?)이라는 시인의 삶에 대한 긍정이 한편으로는 올바르고, 달리 생각하면 참 한가하다. 언제부터인가, 거리를 지나면서 보는 모든 아이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예쁘게 찬란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 모습이 그림 잘 그리는 만화가들의 인물 실루엣처럼 보기에 좋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내가 늙었다는 증거일 터이다. 이문재 시인 또한 나보다 조금 더 늙어서 사는 게 모조리 기도발이라 주장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늙는다는 건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내 삶은 추해지는 그런 걸 감각하는 일 같다. 불공평!
(2022.3.16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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