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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아재 개그는 있고, 아재 시도 있을까? – 이은봉, 다리

  개그에도 아재 개그가 있는 것처럼, 시에도 아재 시가 있지 않을까? 아재 개그가 주로 말꼬리나 물고 듣는 사람을 싱겁게 하는 것처럼, 아재 시도 정형화에 가까운 형식이나 자연 내지 인간 친화적 내용으로 어디서 본 듯하다고 느끼게 하는 그거 아닐까 싶다. '백내장 수술한다고? 백내장? 그게 뭐요? 소화기 계통인가?'라고 농담한다면 아재 개그하고 있는 거다. -내장에서 소화기를 연상해내는 발상이 웃어주기에 너무 낡았다. 그럼, 아재 시는 있을까?

 

다리                   - 이은봉

 

민들레 샛노란 꽃들 지고

화들짝 꽃솜들 피어난다.

민들레 꽃솜들에게는

다리가 달려 있다

꽃솜들의 다리는 바람 ……

바람 다리가 달려 있는

민들레 하얀 꽃솜들

하늘, 가득 날아오른다

 

잘 익은 해 그만 땅으로 떨어진다.

광화문 시청 청계천

오조조 별들 뜬다 촛불별들

아직 어두운 촛불별들에게도

다리가 달려 있다.

그들의 다리는 사람 ……

사람 따라 촛불별들 걷는다

세상, 차츰 밝아온다.

 

-    김종훈 평론집 『시적인 것의 귀환』, P245-246 재인용

 

  인용시 [다리]는 잘 쓴 시이다. 두 개 연이 대구처럼 이어진다. 민들레 꽃솜들 다리는 바람, 촛불별들 다리는 사람,이라는 발상은 기발하기도 하다. 1연은 자연의 조화를, 2연은 사람들, 특별히 불의에 항의하는 민중들의 조화를 품고 있다. 꽃솜들 다리와 촛불들 다리- 그 '바람' '사람'이라는 발음조차 계산된 것 같아 절묘하다두 개 연의 대구는 한쪽만 떼어 놓으면 시의 총량에서 반을 훨씬 넘게 허물 것도 같다. 그만큼 그 대구의 시너지는 부분의 합보다 큰 전체를 실감하게 한다.

 

  그래도, [다리]를 좋은 시라고 해주기는 어쩐지 꺼림직하다. 그 시는 자연이 곧 아름다움의 원천이라는 흔한 상식에 기반하고 있고, 민중이 또한 선()의 기준이라는 순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있다. 자연은 인간이 보기에 좋아라 아름다운 게 아니고, 그 촛불 들었던 민중이 5년만에 변심(?)하여 아무튼 반대로 투표하지 않았는가? 이 말은 나의 정치적 견해일 뿐이지만, 민중 내지 다중이 곧 선의 기준이 아니라 이()를 따르는 현실 세력이라고 그만 낭만적 시선을 거두어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어떻든, [다리]는 아재 시 같지만 잘 쓴 시다. 모두가 새로울 수는 없다. 새롭겠다는 욕망 또한 새롭지 않은 건 아닐까? 낡은 생각도 잘 쓰면 잘 쓴 시가 되는 게 아닐까?

 

(2022.7.11 진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