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지시인선 572, 2022.8.31
“시인은 이 세계의 풍경들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받는다. 시인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안들에 대해 발언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것을 항상 특정한 재현의 방식으로, 예컨대 명확한 내러티브를 구성하거나 선명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만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 사회의 감성적 매트릭스를 해체하고 새롭게 조직화하는 다른 방식은 없을까?”
- 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창작과비평 2008겨울』에서
진은영 시인이 『창작과비평』 2008년 겨울호에 내민 [감각적인 것의 분배]라는 비평은 시의,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논쟁을 이끌었다고 한다. 그 글은 “이주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거나 지지 방문을 하고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논문을 쓸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을 시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라는 시인의 개인적(?) 고민에서 출발한다. 전문가들의 비평이 그렇듯이, 그 글은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에서 이론을 끌어들여 복잡하게 전개되지만, 요지는 “시인은 (통상적인 분류법대로) 정치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고 비정치적인 주제를 다룰 수도 있지만, 어떤 주제든 그 시가 가장 정치적인 방식으로, 즉 비가시성을 가시화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함으로써 감성의 지각변동을 가져오는 그런 방식으로 씌어지길 희망한다”는 문장에 배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뭔 소릴까? 시인이 사회적 이슈에 공감하고 거기 적극 가담할 수 있지만, 시가 꼭 ‘선명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만’ 쓰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선명한 메시지’, 가령 백무산 시인이 세월호 참사 후 선체 인양이 논의되던 시기에 “무엇을 인양하려는가…그것은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의 폐허다” ([인양] 중에서) 라는 발언이 그런 사례이다. 진은영도 같은 사건을 보지만, 거기 공감하고 적극 동참하지만, 다르게 말하겠다는 시적 의지를 피력하는 것 같다. 백무산 시가 ‘선명한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시를 뒤로 밀어내고 있다면, 진은영은 시와 메시지를 동행하려는 것 같다. 진은영이 ‘정치적 이슈를 시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은, 거기 재주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시를 쓸 수 없다는 의도로 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함으로써 ‘감성의 지각변동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시를 쓰겠다는 시론(詩論).
2008년, 진은영이 피력한 시론은 그러했다. 2022년, 진은영이 세 번째 시집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냈다. 그 14년의 긴 간격 동안 진은영의 시론이 바뀐 것은 없지 싶다. 그는 시론처럼 실천했고, 신간 시집으로써 시론을 실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 시집은 발간 이후 지금까지 시부문 베스트셀러로 기록되고 있다는데, 시집 뒤 해설을 쓴 신형철의 필력 또한 그 기록 행진(?)에 보탬이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시를 정확하게 읽어낸다는 것, 시 바깥 또한 해박하게 읽고 있다는 것, 글을 잘 꾸려낸다는 것, 신형철의 비평은 읽을수록 감탄스럽다. 어찌되었든, 그 시집에는 쉽게 감각되는 몇몇 작품들도 있고 쉽지 않은 보다 많은 작품들이 있다. 진은영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그의 시론의 승리일까? 시적 다른 목소리에 대한 독자의 호사 취미에 지나지 않을까? 나는 모르는 것을 세상의 한쪽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사실 - 진은영
별들이 움직이지 않는 물 위를 고요가 흘러간다는 사실
물에 빠진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
오늘 밤에도 그 애가 친지들의 심장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물을 무사히 건넌다는 사실
한양대학교 옆 작은 돌다리에서 빠져 죽은 내 짝은 참 잘해줬다, 사실은
전날 내게 하늘색 색연필을 빌려줬다
늘 죽은 사람에게는 돌려주지 못한 것이 많다, 사실일까
사실 나는 건망증이 심하다
죽은 사람에게는 들려주지 못한 것도 많을 텐데
노래가 여기저기 떠도는 이유 같은 거
그 사람이 꼭 죽어야 했던 이유 같은 거
그 이유가 여기저기 떠도는 노래 같은 거
사실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 짝은 입을 꼭 다물고 건져졌다는데
말할 수 없다
그 애가 들려주려던 사실
어둠의 긴 팔에 각자 입 맞추며 속삭였다
산 사람대로 죽은 사람대로 사실대로
진은영의 신간 시집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세월호 관련 시가 여러 편 등재되어 있다. 시인은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들과 그 친지들 편에서 적극 활동했다고 한다. 희생자 “예은의 열일곱번째 생일을 앞두고 시인 진은영은 예은의 목소리로 발화해야 하는 시, 소위 ‘생일시’를 청탁받는다.” (신형철 해설 중에서) 시인 진은영이 예은의 목소리로 발화하는 '생일시' [그날 이후]는 “영매처럼 빙의되어” 단숨에 쓰여진 게 아니라, 예은의 자취를 일가친지들로부터 세세히 듣고, 그가 살았던 장소를 더듬어서, 신형철의 표현에 따르자면, “rhyme (미적인 것)과 reason (논리적인 것)”으로 천천히 쓰여진 것이다. 그 시를 읽으면서, 그 시를 읽는 혹은 낭독을 듣는 예은의 부모와 친지들이 전율하고 오열할 것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 시는 희생자 예은의 삶의 흔적에 기반하므로 그들을 슬프게 울게 했을 터이고, 그 죽음 이후가 삶을 넘어서 행복한 것을 예은의 목소리로 발화함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울게 했을 터이다.
그 시집에 여러 편 산재되어 있는 세월호 관련 시를 피해서 다른 비극을 말하는 인용시 [사실]을 고른 것은 그 시들이 좀 길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감응의 강도를 낮추어야 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인용시 [사실]은 “한양대학고 옆 작은 돌다리에서 빠져 죽은 내 짝”의 비극을 기억하는 시이다.
인용시에는 여고생이 연못에 빠져 죽은 사건으로써 사실이 있다. 실수로 익사했다기보다 자살의 정황으로 보이는 그 사건은 개인의 죽음을 초래한 사회적 배후(학교 혹은 가정과 관련된 어떤 폭력적 상황?)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어야 했던 이유 같은 거’는 여기저기 떠도는 노래처럼 풍문으로써 사실(이라는 호명만)이 있다. 내가 말하지 못한 사실(호명)만 있다. 죽은 아이가 죽음으로써 말하지 않는 사실(호명)만 있다. 그 여러 층의 사실(호명)들만 있고, 어떤 실마리도 그 시에서 찾기는 어렵다. [사실]은 사실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 이후 살아가는 자의 감성을 문지를 뿐이다.
이러한 시적 태도 - 희생이나 피해를 전면화하기보다, 가해자 혹은 가해 구조에 분노하기보다, 어떤 불의나 사악에 저항하기보다, 희생자와 그 주변을 연민하고 거기 감응하는 ‘사랑과 치유’가 필요하고 훨씬 실질적일 수 있다. 올바르지 못한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세상 쉽다는 걸 알 사람들은 안다. 비판이 통쾌해도 허망한 이유가 있고, 그런 이유로 현실은 올바름으로 직진하지 못한다. 어쩌면 힘에 저항하기보다 힘에 곤란 받는 이들에 감응하는 그것이 또 하나의 대안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진은영이 ‘감성의 지각변동을 가져오는 방식’이라고 이름한 시쓰기는 ‘사실’의 파도 위에서 또 다른 난파를 예감하고 예방하는 실질적 대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는 것은, 신형철이 기막히게 해설하는 ‘사랑과 저항과 치유’가 하나라는, 그 셋을 동시에 감당하는 주체들에 주목하고 위무하는 시선의 전환이다.
‘선명한 메시지’를 내는 시가 있고, 이제 ‘감성을 지각변동’하는 시가 있다. 앞의 시가 바깥을 향해 변혁하려 한다면, 뒤의 시는 안을 다독여 치유하려 한다. 시의 기능에 있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없었던 것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2022.10.22 진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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