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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

피아노와 노래 – 피아노는 무겁다

 
피아노는 무겁다           - 진후영
 
오래된 피아노가 있다
아이들 어릴 적 욕심에
재능일지 재산이 될지
적지 않은 값을 치르고
거실에 앉혀 놨는데
피아노는 노래하지 않았고
거실 바닥을 짖누르기만 하다가
베란다로 복도로 작은방으로 옮겨졌는데
중고 사이트에 헐값을 불러도
아무도 안 사가고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를
아무도 사가지 않고
노래를 생각하면 피아노가 있고
피아노를 생각하면
어째서
노래가 안 되는지
그 방에 피아노가 있고
이상하게 그 안에 노래는 없다
 
오래된 피아노가 있다
대형 폐기물 딱지를 붙여서
누군가 버렸는데
아이들이 지나가다 앉는다
아무도 없을 때
건반을 두드리지만
노래는 안되고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는지
노래는 안 되다가
쾅 -----
신경질만 허공으로 사라진다
 
(2024.6.29 진후영)
 
[시작노트]
  누군가 피아노를 대형 폐기물로 내놓았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거기 앉아서 건반을 두드린다. 제법 맑은 가락이 울린다. 노래가 삐끗하는 것이 피아노가 낡았기 때문인지 아이가 서툰 때문인지, 노래는 노래였다가 아니었다가 잠시 주변을 흔든다.
 
  나는 아내와 피아노 버리는 문제로 여러 번 다투었다. 내가 암만 버리자고 설득을 해도 아내는 극구 반대한다. 딸이 결혼하면 물려주겠다나. 그건 이유가 아닌 듯싶다. 어떤 추억이 피아노에 있기 때문이리라. 어렵사리 중고 사이트에 팔자고 설득했지만,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 그렇게 피아노는 우리집에 있다. 버리고 싶으나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이청준의 소설 [눈길]에 보면, 소설의 화자는 어머니를 노인이라 부른다. 대학시절 읽은 그 소설을 여전히 기억하는 것은 그 소설을 읽었을 때 감동이 유별났기 때문이다. 소설의 화자는 어머니를 미워한다. 어머니라 하지 않고 노인이라 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소설 끝에 가야 독자는 제목이 왜 [눈길]인지 알게 된다. 어린 아들을 외지로 보내면서, 아들과 함께 걸은 길을 되돌아오는 눈길, 아들 발자국을 한발한발 되밟아 돌아오는 눈길, 어머니의 눈길은 한발한발 모성의 눈길이다.
 
  나는 아버지를 노인이라 부른다. 그 노인이 구십을 넘어 이제 요양병원으로 모셔졌다. 아버지라는 자리는 어머니 자리와 다르다. 모성이 본능인 것과 다르게 부성은 본능이 아닌 듯싶다. 사랑하지 않으나 거두어야 할 노인이라 나는 생각한다.
 
  부성이란 어쩌면 피아노다. 피아노가 노래는 아니다. 노래는 노래하는 실천, 다만 노래하는 행위가 노래이다. 피아노는 그저 노래할 수 있는 도구 – 물건이다. 부성이란 본능이 아니라 실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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