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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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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기만, 절대는 사족 – 김지녀, 섬 시집 『시소의 감정』(민음사, 2012.9.19 초판 3쇄) 나이들면서 인간 관계가 무너지는 걸 실감한다. 왜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지금인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90 근처의 부모는 더 이상 부모가 아니다. 대화가 불가능하다. 살아 생전 어머니는 자식들 눈치만 보았다. 당신이 반복해서 기억하는 것들은 너무나 지루했다. 삶을 그 지혜를 학습하지 않은, 그나마 눈치 볼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아버지는 아집만 남아서 무엇이든 가만 놔두라고만 한다. 대화가 끊어졌다. 30을 넘은 아들은 이제 제 삶을 산다. 아들의 삶에 느슨함이나 무절제가 있어도 젊음이 대개 그렇다고 간섭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제 생각을 체득한 지혜처럼 주장하려 악을 쓸 때는 입을 닫지 않을 수 없다. 말싸움도 한두 번이고, 매번 그 ..
아재 개그는 있고, 아재 시도 있을까? – 이은봉, 다리 개그에도 아재 개그가 있는 것처럼, 시에도 아재 시가 있지 않을까? 아재 개그가 주로 말꼬리나 물고 듣는 사람을 싱겁게 하는 것처럼, 아재 시도 정형화에 가까운 형식이나 자연 내지 인간 친화적 내용으로 어디서 본 듯하다고 느끼게 하는 그거 아닐까 싶다. '백내장 수술한다고? 백내장? 그게 뭐요? 소화기 계통인가?'라고 농담한다면 아재 개그하고 있는 거다. 백-내장에서 소화기를 연상해내는 발상이 웃어주기에 너무 낡았다. 그럼, 아재 시는 있을까? 다리 - 이은봉 민들레 샛노란 꽃들 지고 화들짝 꽃솜들 피어난다. 민들레 꽃솜들에게는 다리가 달려 있다 꽃솜들의 다리는 바람 …… 바람 다리가 달려 있는 민들레 하얀 꽃솜들 하늘, 가득 날아오른다 잘 익은 해 그만 땅으로 떨어진다. 광화문 시청 청계천 오조조 별들..
비유가 문제다 운전하다 앞차 뒤유리에 부착된 스티커를 보았다. “심장이 콩닥콩닥” 아마도 초보운전을 표시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환유 문장이다. 내가 본 초보운전 스티커 중에서 지시내용을 가장 희미하게 보여주는 나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저 스티커를 본 사람은 저거 초보운전 표시인가,라고 의심하게 마련이다. 초보운전 표시의 기능으로만 본다면 저 스티커는 낙제에 가깝다. 다만, 기능 외로 저 스티커는 제 값을 대신하는 것도 같다. 그 의미를 이해하는 뒤차 운전자에게 옅은 미소를 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유는 언제나 간접화법이다’라는 사례가 될 거 같다. (2022.5.16 진후영)
국시 먹는 헛것의 궁리 점심 먹으러 나왔는데 대통령이 즐겨드셨다나, 안동국시집.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광고가 될지 다시 오지 않을 계기가 될지 헛갈리는 게 우리 현대사의 곡절을 상징하는 사례 같다. 대통령이라는 만인지상의 자리가 꿈꾸지 않은 자가 얼떨결에 올라가는 빙고가 되어버린 현실. 그간 지나간 대통령들과 또 다른 코메디나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긴 5년이 남았다. 그 세월이 지나면, 견뎌낸 자들에게 지난 세월이 보상될 리 없을 테고, 미리 궁리나 해두어야겠다. 비록 빙고를 부를 쾌재는 없더라도 나는 살아냈다고, 보상이 필요 없는 세월이었다고, 세상 헛것들에게 헛것 아닌 게 있더라고, 비록 헛것으로 그치더라도 헛것을 거부할 궁리나 해야겠다. (2022.5.7 진후영)
구토와 구타, 한가한 해석 세계를 구토로 체험하는 자가 있고 세계를 구타로 체험하는 자도 있소 댁은 어떻소, 구토요? 구타요? - 김언희 시 [녹취 A-22] 중에서, 『창작과 비평, 2022 봄호』 창비 2022 봄호를 읽다가 김언희(1953-) 시를 보았다. 나이 많은 이 시인은 워낙 끼가 남다르다. 그의 내숭 안 부리는 통쾌한 언어를 위 시에서도 볼 수 있다. 구토에서 구타로, 말놀이 같지만, 그 차이는 무척 의미심장하다. '구토'는 거의 문학적인 클리셰이다. 인간이 비위 상할 때 구토하는 것처럼, 시나 소설에서 '구토'는 제 정신을 비워내는 제스처이다. '구타'는 하는 놈과 당하는 놈이 좀 결이 다를 것인데, 폭력적 세계 내지 그런 삶을 의미하겠다. '구토'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충격에 대한 반응이고, '구타'는 안에서..
영화, 『Collateral Beauty』는 번역 못 한다 근일 영화 『Collateral Beauty』를 보았다. 국내 개봉 때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라고 했다나. 원제목을 그냥 쓰자니 Collateral 단어가 어럽고, 번역하자니 쉽지 않았을 테고, 해서 내용을 요약한 제목을 지어낸 것이겠지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Collateral 이란 '부수적, 2차적'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에서는 collateral beauty를 '삶의 고통이 주는 아름다움'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위로의 말로 누군가 ‘Collateral Beauty’를 느껴보라고 권한다. 자식을 잃고 삶의 고통에 깊게 가라앉은 상태를 '아름답다'고 말한다고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위로는커녕 그런 말 함부로 했다가는 자식 잃은 어머니에게..
어떤 반성 – 페미니즘 관련 기사 두 편을 읽고 페미니즘에는 내가 할 말이 없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정치적 평등에서, 사회적 평등으로, 지금은 모든 약자들의 권리로 3단계 업그레이드를 거쳐왔다고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몇 쪼가리 읽어 얻은 얄팍한 내 지식은 하찮고, 실천적 삶에서 나는 페미니즘에 한참 위배되는 생활을 하고 ..
모국어라는 항아리에 묻히라 - 신경숙 표절 유감 신경숙 소설의 표절 논란이 더 커졌다. 그의 소설을 기껏해야 두어 편 읽어본, 그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나로서는 표절에 관해서 뭐라 할 말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순수 창작에 남의 문장을 베끼는 글쓰기를 왜 하는지, 직업작가의 안이한 배짱이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정도가 그의 표..
거친 글과 잘 쓴 글 - 박범신의 세월호 단상 저 밑에 김용옥 선생의 세월호 사건 격문을 읽은 유감을 나름 끄적여 본 게 있다. 같은 사건을, 같은 분노로 토해내는 박범신의 문장이 경향신문 오늘 자에 게재되었다. 소설가의 글은 과연 격이 다르구나 느낄 수 있는 문장이다. 도올 선생의 글은 거칠어 분노의 정서에 닿을 지 모르나, ..
도올 선생 유감 도올 선생이 한겨레 신문 사회란에 특별기고문을 발표했다.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격문이다. 선생의 다혈질한 성격처럼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 선생의 책을 여러 권 읽었고, 그 강의에 자주 감동하였고, 나는 선생을 나의 지적 멘토로 모시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선생의 글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선생에게 시대를 가르치는 스승의 기대는 접어야겠다. 선생의 그 글을 한번 따라가 보자. 선생의 다른 글에 보이는 강점이 거기에도 있다. 이승만의 도피, 모윤숙 가두선전방송, 임란 때 선조의 실책,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기조 등등 – 그 글에는 근래 뉴스 지면을 꾸미는 여러 사실들이 보다 깊숙이 드러난다. 그것들 중에는 뉴스 지면에서 읽을 수 없는 구체성이 있다. 선생의 텍스트가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