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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이야기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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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쁨을 주는 책 – 권혁웅 『시론』 (문학과지성사, 초판23쇄, 2013.10.4) 책을 읽으면서 진도가 잘 안 나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개인차가 크겠지만, 내 경우 두어 시간 정도 집중하면 그 다음에는 집중도가 떨어져 그 책을 계속 읽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이한 경험으로 책 내용이 너무 좋아 천천히 진도를 나가거나, 아예 멈..
두 겹의 연민, 두꺼워진 슬픔 – 이윤학 [사과꽃] 시집 『짙은 백야』 (문지사, 2016.7.13) “어조는 화자의 ‘심리’상태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파생된다.” (권혁웅, 『시론』, 167) ‘말투가 왜 그래?’ 라는 말은 보통 불손(不遜)을 탓하는 뜻이다. 대화에서 말투는 억양에 의해 구분된다. 누구라도 ‘밥 ..
풍경이 열어놓은 정서 – 이윤학 [외딴집] 시집 『어떤 백야』 (문지사, 2016.7.13) ‘Open to interpretation’이라는 말이 있다. ‘해석의 여지’라는 뜻이라는데, 영화 ‘인셉션’에서 마지막 장면이 그것이다. 조그만 팽이가 돈다. 팽이가 넘어지면 현실이고, 넘어지지 않으면 꿈속을 뜻한다. 팽이가 위태롭게 회전하는 동안 영화가 끝..
저항을 통과한 슬픔 – 김사인 [오월유사]와 [8월] 시집 『어린 당나귀 옆에서』 (창비, 2015.4.1 초판4쇄) “일모(一茅) 정한모 선생은 깊은 분이셨다. 학부생을 연구실에 두는 일은 거의 없는 법인데, 일모는 어찌 ‘사인이’를 문하에 거두었을까?... 험함을 피하지 않던 제자를 공인의 몸으로도 포용한 스승의 마음” (시집 뒤 [발문] 에서) 김사인 시인은 대학시절부터 공안에 쫓기는 삶을 살았는가 보다. 시인의 스승인 정한모(1923-1991) 시인이 그를 챙겨 연구실에 적을 두게 했다는 것인데, 80년대 혼돈하던 시절 김사인 시인은 당시 우세하던 실천문학의 전위(前衛)였다. 그 활동이 시인의 시에 견고한 기반을 주었겠지만, 앞서 출간된 두 권의 시집들(1987, 2006)을 읽어보지 않고는 따로 말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다만, ..
소소하게, 치밀하게 – 김사인 [바짝 붙어서다] 시집 『어린 당나귀 옆에서』 (창비, 2015.4.1 초판4쇄) [바짝 붙어서다] -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고독한 바짝 붙어서..
사랑, 그 지극한 몸짓 – 김선우 [시집] 시집 『녹턴』 (문학과지성사, 2016.4.11) 사람이 짝을 이루어 산다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요즘 결혼이 어려운 경사가 된 것은 거의 경제적 이유일 뿐, 사람이 짝을 이루고 사는 일은 여전히 평범하다. 김선우 시인의 시집에서 읽을 수 있는 사랑 역시 평범하다. 너무나 평범하여 오히려 비..
주체는 대상이 만든다 – 김선우 [한 방울] 시집 『녹턴』 (문학과지성사, 2016.4.11) “자아는 주체의 거울 이미지에 불과하다” (권혁웅, 시론, 37) 새천년이 열리고, 한국 현대시에 새로운 기운이 생동했었는가 보다. 그 물결을 '뉴웨이브'니 ‘미래파’니 뭐라 부르든, 거기서 읽을 수 있는 변화 가운데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자아..
공평한 세상에 살다 – 마종기 [이슬의 애인]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 (문학과지성, 2015.9.9) “한일굴욕외교반대 서명에 현역 장교인 군의관의 신분으로 가담했다는 이유로 수감되었던 당시의 사건” (시집 뒤 해설, 151) 이후 마종기 시인은 미국으로 거의 망명(?)을 했는가 보다. 시인은 1966년 도미하여 미국 오하이오 의대 톨레도 ..
도발적 언어, 변태적 상상력, 그리고 선어(禪語) - 김언희 [회전축]과 [보고 싶은 오빠] 시집 『보고 싶은 오빠』 (창비, 2016.4.11) 김언희 (1989년 등단) 시인은 시력 25년이 넘는 중견이다. 이번 시집까지 5권의 시집을 대략 5년마다 엮어냈다는 시인은 그 도발적 언어와 그에 상응하는 변태적(?) 상상력으로 독자에게 시를 넘어서는 충격을 안긴다. ‘내가 진짜 되고 싶었던 것은 ..
적당한 상상력 – 김소형 [푸른바다거북] 시집 『ㅅㅜㅍ』 (문지사, 2015.11.11) [푸른바다거북] - 김소형 동이 트는 순간에 바다에 가면 안다 밤과 바다가 갈라져 오렌지빛, 눈 뜨는 그 순간에 어깨에 천을 둘러싼 채 젖은 머리칼로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사실 나는 그를 안다 눈이 움푹 파인, 조용히 웃음 짓던 ..